'제작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0.28 후유증
  2. 2013.11.16 태국촬영 출국 하루전
  3. 2013.07.03 다시 카메라를 들다 2
  4. 2009.09.27 레드마리아 16 - 고통에 대한 반성
제작일기2014. 10. 28. 12:43

며칠전 일본에 사는 레드마리아2 주인공 중 한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 촬영을 위해 하루종일 빡세게 몸을 좀 굴렸더니 지금까지 후유증이 심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날 하루가 아니라 나는 이미 도쿄에서 그 분을 찍고 있어야 했고

한국에 같이 들어와 그의 일과를 찍고 나서 다시 일본으로 들어가 오사카와 도쿄의 일정

카메라에 담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니까 그건 지난 여름에 세워진 계획이었고 나의 10월의 스케줄은 그렇게 10일간을 

비워 두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여름부터 시작된 제작비 문제는 그 분의 촬영을 비롯해서

모든 일정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이상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사실도 힘들었지만

그 후유증이 생각보다 여러방면으로 영향을 준다는데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촬영도 혼자 해야하고 인건비가 없으니 사람을 쓰기도 힘들고

교통비를 절약하자니 장비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그러다보니 몸이 너무 지친다. 한번 찍고나면 그 후유증이 며칠을 간다.

그 며칠에 몸을 다스릴 비용은 또 늘어나고

결국 찍어야 할 내용들을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0월의 일정도 머리속에서 지우고 있었는데

그 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이 영화를 찍는지가 다시금 상기된다.

도쿄촬영은 놓쳤어도 오사카 촬영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카드로 항공권 두장을 끊어 놓고 오사카의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나 너희집에서 좀 묵어야 할 거 같은데 괜찮겠니?

통역하고 나 둘이 갈거야.

언니야 그냥 '나 간다' 문자 하나 날리면 되지 뭘라코 전화를 하노.

젠장...이쁜년.

힘들때는 별개 다 상처가 되고 별개 다 위로가 된다.

그래 일단 숙소는 해결이 됐으니 몸을 만들자 싶어

어제는 한의원에 달려가 침을 왕창 맞는데 슬슬 눈물이 흐른다.


침을 놓던 황원장이 놀랬는지 침이 아프냐고 묻는다.

침이 아픈게 아니라 할일은 많은데 몸이 자꾸 이래서 속상하다고 했더니

대뜸 혼을 낸다.

무슨소리예요.그렇게 뛰어다니는데 몸이 이정도로 버텨주었으니 고마워해야지요.

젠장...눈물이 더 난다.

황원장이 안되겠는지 몸의 뒷판을 치료하고는

다시 앞판에 침을 놓는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 한없이 고맙다.


찍고 있는 영화 자체가 불편한 내용이어서인지

올 한해는 여러가지 일들이 계속 긴 후유증을 남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그 영화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종종 받는다.

산다는건 참 묘한 일인 것이다.

그나저나 내일 새벽부터 3일간을 달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침을 맞고도 몸이 회복이 안된다.

오늘 한번 더 마취주사를 맞고 가야 할 거 같다.


하루 웬종일 일본에서의 찍을 내용들을 고민하고 공부해도 모자랄판에

무사히 찍을 수 있을 몸만 걱정하고 있으니...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11. 16. 22:10

사무실에서 레드마리아2 제작지원을 위한 문서정리와 트레일러를 준비한다고 10일간을 보냈다.

이러고 있자니 문득 2008년도에 레드마리아 일본 촬영을 앞두고 제작비를 마련하기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필리핀 촬영으로 지원받은 제작비를 다쓰고

다시 일본촬영을 위해 제작비를 마련해야 했던 시기.

더구나 그당시는 엔화환율이 가장 높이 치솟던 시기인지라

더더욱 부담이 됐고 체류기간도 3달이나 됐으니 정말 전쟁이었다.

일본 촬영만 예상비용이 6천만원이 훨씬 넘었는데 제작비통장은 마이너스고

결국 할 수 있는 방법은 후원받는방법 밖에 없었다.

후원을 위한 홍보카드를 만들고 제작위원을 찾기위해 전스텝이 한달이 넘게 뛰었지만

제작위원을 통해 마련한 돈은 천이백만원이 전부였다.

 

제작비를 더 마련하고 떠나자니 그것도 하세월이고 이미 잡혀있는 일본 촬영일정을

우리편한대로 바꿀 수도 없고...

결국 준비된 돈만 가지고 무작정 떠났었다.

그리고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 그곳에서 국제전화로 제작위원들을 모집했고

한푼 두푼 받는대로 촬영을 했었다.

근데 다시 또 레드마리아2를 위해 비슷한 계절에 이 짓을 하고 있다.

전작을 만들면서 제작기간 중에 그것도 해외촬영을 하는동안

돈을 마련하기위해 머리와 몸과 정신을 쏟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뼈저리게 느겼기에

이번에는 그걸 좀 최소화하기 위한 몸부림인거다.

 

물론 그런 마음이 늘 현실로 보답이 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절실하면

노력도 그만큼 해야 가능하다는걸 알기에 없는 시간에 징글징글하게 집중을 햇던거 같다.

하지만 얼마 안되는 촬영분과 부족한 시간은 생각대로 편집을 바쳐주지 못한다는거.

그렇다고 이마당에 중단할 수도 없고 편집을 하면서 스텝들은 물론 해외에 있는 친구들에게

의견을 들어가면서 나름 복잡하고 예민한 이 영화를 설명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썼던거 같다.

근데 이제는 더이상 붙잡을 수도 없다.

내일 당장 태국으로 촬영을 떠나야 하는데 마음만 뒤숭생숭...

그래서일까 생각이 점점 쪼잔해진다.

제작비도 제작비지만 이제는 최소한 쪽팔리지 않아야 한다는게 속마음인 것이니...아흐

그리고 그래야 적어도 앞으로의 제작이 순조롭지 않겠나 하는것.

 

목표는 제작비였는데 어쩌다 쪽팔리지 않는거로 마음이 이렇게 복잡해지다니...쩝

근데 이번에 같이 출국하는 영화의 주인공 연희가 전화를 했다.

경순 숙소가 아직 예약이 안되서 지금 경순이 바로 해야되는데요....

허겁지겁 인터넷에 접속해서 그녀가 보내준 사이트를 뒤진다.

대박이네...70%나 세일해서 하루 42000원이다.

방두개를 일주일 예약하고 총액을 결재하고나니 막상 총액은 역시 싼게 아니었다.

갑자기 다시 제작비로 눈이 돌아간다.

그래 쪽팔리는 것보다 중요한건 제작비구나 라는 것.

 

우자지간 이제 눈을 태국으로 돌리자.

스텝들과 함께 하는 본격적인 촬영에 통역 지현이까지 붙어 4명이 출국한다.

그리고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에서 두명의 활동가들이 출국하다.

이번 촬영의 목적은 그들이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http://www.icaap10.org/)에 참가해

해외의 성노동자들과의 어떤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국제 연대를 하는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오늘까지 그들도 우리도 빡세게 일하다 간다.

공항에서 만나 그때부터 시작이 될거 같다.

글을 쓰다보니 이제사 두근두근....

그래 하나도 놓치지 말고 영화가 원하는 멋진 그림들을 잘 담아보자.

그러자면 일단 촬감 만호를 족쳐야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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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7. 3. 15:04

지난주 카메라를 빌려서 레드마리아2 첫 촬영을 했다.

재미있게도 레드마리아의 첫 촬영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노동자들이 시작.

물론 그때와 상황은 많이 다르다. 집창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노동자를 내세우는 집회도 아니고.

이번에는 그냥 성노동자를 지지하는 모임 지지에서 주최한 '안전한 섹스,즐거운 섹스.

대중들과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행사를 생각하다가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단 테스트 촬영을 해보자고 나갔는데

의외로 쓸만한 이야기가 있어 그냥 첫 촬영으로 기록을 하기로 했다.


레드마리아2를 기획하면서 이번 촬영은 오래전부터 나름 빵빵하게 제작 워크플로어를 구상했었다.

체력적인 조건과 카메라 기기의 다양화 등을 고려해서 촬영 감독을 기본으로 나름 괜찮은 카메라를 

눈여겨 두었었고 나를 대신해서 무거운 짐들을 같이 보조해줄 카메라보나 조연출을 생각하고 잇었다.

하지만 정작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고 지원을 받기 시작했지만 전체 예산을 고려해서

그런 인건비와 장비를 쓸만한 계산이 안나온다.

가장 난감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보기에는 그래도 많아보이고

당사자입장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은 지점의 예산이 눈앞에 있을때다.

심지어 쓸 수 있는 항목과 쓸수없는 항목이 내가 필요한 지점과 전혀 교집합이 안나오는 상태.


그래서 몇주일 머리가 꽤나 아팠다.

대체 어떻게 워크플로어를 다시 짜야 정답에 가까운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국내 촬영도 아니고 다시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찍어야 하는 이 국제프로젝트를 말이다.

사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혼자서 하면 된다.

가장 저렴한 카메라와 가장 가벼운 장비를 구비해서 가장 손쉬운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것.

물론 몸이 예전처럼 최고의 상품에 도달할 만큼 질이 좋지는 않다는게 좀 걸리긴 한다.

그래서 요즘 몸 만들기에 정신이 없다.

몸만드는 비용이 장난 아니게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건비를 쓰는 것보다는 적다는게 참 슬픈일.


꼬질꼬질하게 생각하면 이것저것 더 머리 아프고 답답해서 마인드를 바꿨다.

너 처음 영화찍을 때를 생각해봐.가장 싼 카메라와 가장 싼 마이크로 뛰어다녔지만

니가 원하는 이야기를 잘 담아냈잖니.그러니 이번에도 처음의 마음으로 시작해 보렴...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웬지 흥분까지 된다.

그래 나에게 맞게 시작하자.

부풀리지도 말고 오바하지도 말고 그냥 지금 딱 할 수 있는 만큼의 방법을 찾자.

가장 작고 가장 효율적으로 작업 할 수 있는 워크플로어를 고민해 보자.

물론 그 비용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적어도 원래의 비용과 스트레스는 대폭 줄일 수 있을듯 싶다.

며칠전 그에 걸맞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봐두었다.

빨랑 그것들을 손에 쥐고 세상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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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09. 9. 27. 16:39

평소 나는 고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지 않았던거 같다. 특히 그 단어가 주체인 나에게 가해지는 상항일 때는 더더욱 해당사항이 없었던거 같다. 대부분 힘들다거나 어렵다는 말로 그 상황을 표현했지 나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말로 표현을 해본적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고통이라는 말은 나보다는 대상에 대한 상황을 표현할때 주로 썼던 말이었다. 민중의 고통이니 그들의 고통이니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작년 필리핀 촬영을 하면서 나는 내내 스스로 고통스럽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란적이 있는데 그 이후 고통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작지않은 화두로 간간히 떠오르곤 한다.

처음 그 고통이 나에게 각인된 것은 올롱가포의 반성매매단체인 부클로드의 촬영때였다. 10대나 갓 20대를 넘어선 거리성매매 여성들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지만 우리는 서로를 관심있어 하면서 즐겁게 촬영을 했었는데 그들중 담배를 피는 몇몇이 나에게 담배 한까치씩 얻어 피우곤 했었다. 한개피에 2페소 하는 담배를 사서 피우던 그녀들에게 한갑씩 사서 피우는 내가 참으로 부러웠을 것이다. 그나마 담배라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고 난 늘 그녀들의 요구에 선뜻 응해주었다.

종종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람이가 버릇될꺼 같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돈이라면 그것이 기대가 되고 우리의 처지에 부담이 될 수 있겠지만 담배란 음식이 아닌가. 있으면 나눠먹고 없으면 아쉬운 것이니 그냥 편하게 생각했다. 그녀들도 역시 내가 담배가 떨어지면 피던 담배를 한모금 주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두개피 중 하나를 주기도 했으니까. 근데 문제는 담배를 나눠 피는 것으로 끼니로 해결해야 할 배고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대부분 아기가 있는 그녀들은 부클로드에서 기거를 했는데 최근 상황이 어려워져 부클로드에서도 그녀들의 음식까지 대줄 형편이 안되었다.

결국 어느날 부터인가 부클로드의 식탁은 나눠지기 시작했고 그녀들은 자신의 음식은 스스로 해결을 해야했다. 우리를 위한 식탁이라는 것도 변변치 않았지만 그녀들에 비하면 부러운 식탁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빵 한조각으로 때우기도 하고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고 때로는 굶기도 하고 그랬다. 비록 담배는 나눠 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을 해결해 주기에는 우리의 처지도 만만치 않았던터라 상황을 직시해야 하는 나의 마음은 꽤나 복잡했다.그렇다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벌리지도 않고 어떠한 도움도 청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상황을 대면하고 있는 나는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고통스럽겠구나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고통스러움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웠다. 수많은 촬영현장을 누비고 나름 극악한 상황들을 얼마나 많이 대면했는데 그렇게 대면할때도 나는 늘 담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들은 여전히 즐겁게 아무렇지 않은듯 자신들의 생활을 즐겁게 해나가고 있는데 그들은 나에게 고통스러우니 우리의 처지를 알려주세요 라고 말하지도 않는데 왜 나는 이렇게 갑자기 고통이라는 단어에 휩싸여 스스로가 주체못해 난린가. 이건 제작비에 대한 부담으로 생겨난 스스로의 감상과 연민이 겹친건 아닐까

부클로드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아람이와 나는 얼마 안남은 제작비를 톡톡 털어 그들이 부클로드에서 한달정도 먹을 수 있는 쌀과 생활용품을 사주고 왔다. 나름 그 고통을 덜어보자는 수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스텝들에게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그당시 활율로 한달에 5만원이면 그들이 먹을 쌀을 살 수 있으니 쌀을 살 돈이라도 보내주자고 했었다. 모두들 동의를 했지만 우리는 그 일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 일도 실천하지 못할만큼 우리는 바뻤고 또 힘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내는 일도 역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먹는걸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생활비를 고민해야 하고 우리도 살집을 고민해야 한다.

고통스럽다는게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은 증폭되고 답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없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인간관계에서 조차 감정노동이 이야기 될 만큼 모두가 힘들게 버티듯이 살고 있으니 우리는 그들보다 잘 살고 있는게 맞는 것인지. 내가 느꼈던 그 고통이 그들의 삶에 무례했던 건 아닌지. 그게 아니라면 진정 나에게 고통을 느끼게 한 그 무게는 무엇으로 부터 온 것일지.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할때 마다 난 그때 느꼈던 고통의 실체를 되묻곤 한다. 하지만 동생과 아버지를 보내면서도 정말 힘들긴 했지만 고통이란 단어는 아니었던거 같다. 아직도 그 이유를 곱씹어 보곤 하는데 한가지 확실한건 인간이 그나마 인간다울 수 있는 요소가 외로움을 느낄 줄 아는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가지 더 첨부됐다는거. 고통을 느낀다는게 참 다행이라고.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