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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경순의 노트2013. 6. 15. 11:50

나는 원래 위아래 따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만나는 친구들도 내가 함께 했던 스텝들도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나이나 경력이나 학력과는 상관없이 두루두루 섞여있어서 구지 동년배를 따진적이 없었다.

어떤때는 같이 이름부르는 친구의 엄마가 나와 동갑인 경우도 있고

이제는 그들의 엄마보다도 내나이가 뻘쭘하니 튀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그냥 이름불러 달라는 말이 예전보다도 상대에게는 더 버겹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그것이 은근히 스트레스다. 내가 원하지 않는 위계와

남들이 원하는 위계의 묘한 긴장이라고나 할까.


그런불편함이 슬슬 다가오는건 순전히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주장함에도

우자지간 나이라는게 슬슬 내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요즘은 50을 넘어선 친구들이나 동료를 보는 눈이 나도 모르게 애잔해 진다.

이제 고작 50인데 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50은 40과는 또다른 환경에 처하기 때문이다.

알바를 해도 일단 나이가 젊은 친구들에게 밀리고

설사 있다해도 후배들의 영역이라는 걸 배려해야 하는 입장도 생긴다.

게다가 마음은 청춘이라고 아무리 강변을 해도 나이가 제한된 혜택에서 이미 밀려나 있고

경력을 존중해 주는 혜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제작지원도 신인들과 똑같이 해야하고 지원을 해도 감독 본인의 인건비는 쓸 수도 없고

그런 지원조차 이제는 젊은 감독들만큼 발빠르게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런 동료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사실<산다 2013>의 총괄프로듀서를 맡은 것도 김미례 감독이 절친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50을 넘어 새로운 작품을 하기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지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무조건 할 수 있다면 그녀를 지지하고 지원해 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녀의 영화는 50대를 넘어선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일하는 것의 의미와 행복을 묻고싶다니

50대를 넘어선 감독의 시선에선 얼마나 절실한 이야길까.

얼마전 김태일 감독이 전화를 했다. 그의 전작인 <웰랑뜨레이>에 출연했던 캄보디아 친구들이

꿀을 보냈는데 누굴줄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필요할거 같았다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니까 평소 우리가 자주 만나거나 수시로 전화를 하는 사이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일년에 몇번 겨우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그가 연락을 준건 정말 감동이었다.

그가 연락을 준 이유도 어쩌면 나와 비슷했을것이다.


그 역시 다음 작업을 위해 고전을 하고 있다.

이제는 그나이로 알바를 구하기도 힘들고 네식구가 생활하기도 벅차서

차라리 빨리 영화를 찍는게 그나마 생계라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니

50을 넘겨 영화를 찍는다는건 참으로 많은 인내심과 함께 도를 닦는 일인듯 싶다.

세계민중사 10부작을 찍겠다는 그의 큰 꿈은 이렇게 비루한 일상을 견뎌내며 한발 한발 나가고 있는 것.

오일전에 척추수술을 받은 이성규감독도 비슷한 케이스.

그나마 그는 젊은 친구들 버금가는 소셜네트워크에 강한 친구인지라

병원에서도 소식을 알릴만큼 적극적인 사람이지만 그의 고민을 쾌활함으로 이겨내는 속내를 어찌 모르겠는가.

그 역시 어렵게 자신의 첫 장편 극영화 완성을 목전에 두고 그간 얼마나 몸을 혹사했을지

능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오십을 넘어선 동료들이 곳곳에서 힘겹게 뛰고 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영위를 위해서라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였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때마다 보다 싼 월세집으로 그나마 남은 보증금을 줄여가며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정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이 일은 추억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래도록 부디 지치지 말고 계속 가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도 웬지 이젠 미안하다.

그냥 잘 버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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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