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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6 레드마리아 11 - 빈곤을 보이는 것으로
제작일기2009. 1. 26. 16:43



윗 사진 - 카메라를 통해 무엇인가를 보는 일은 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늘
              긴장이 되고 속도감이 느껴진다. 잘 찍어야겠다는 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잘
              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다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이
              어느새 내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아래 사진 - 빈곤을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토론하기 위해 6개의 분과로 나누어 
                 토론이 진행이 됐다. 모두들 자신의 의견을 포스트잇에 적어 주제별로 모았는데
                 현재 곤란을 느끼는 것에대해 그들이 써내는 글귀를 보며 나라만 다를뿐
                 하나하나가 어찌나 와닿든지 역시 여성이 고민하는 지점은 비슷하구나 했다.
                 "모델이 없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 "대화장소의 부재"...


 

일본의 첫 촬영은 일하는 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 총회로 시작됐다. 올해로 3회째 맞이하는 이들의 총회는 좀 각별하다. 한국의 단위사업장 중심의 총회와는 달리 전국의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담을 하거나 조직에 가입하게 된 경우라서 서로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모인사람들의 대부분이 식당이나 기업 그리고 백화점, 보모,간호사,전업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파트타임(일본에서는 이를 파견직이라 한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그들모두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하찮게 취급되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하고서 이곳까지 오게됐다는게 나름 신선한 경헙이었다.

이날 총회의 구호는 “빈곤을 보이는 것으로, 천천히 관계를 풍요롭게”라는 것이었는데 총회의 과정을 지켜보다보니 너무도 와닿는 이야기였다. 최근 파견직문제가 일본에서 심각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사실 여성의 파견직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60년대 이후 계속 되는 문제였다는 것.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회나 국가가 관심조차 보이지 않다가 작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불황 이후 남성들이 대거 회사에서 해고되기 시작하자 파견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에 많은 파견직 여성들은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최근 파견직문제가 공론화 되고 있음에도 그것이 여성보다는 남성들의 일자리 문제로 가시화되고 있는 형편이니 여성스스로 이제는 다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일하는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몸이 먼저 소름끼치도록 지지를 외치고 있었다는 것. 이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재밌는 대목이 기업내 노동조합이 있었어도 여성들이 겪는 파견직문제에 별다름 도움이 되지 않아 스스로 법정투쟁을 하면서 싸워온 이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과 멸시속에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에 바라는 점들을 이야기할 때 속을 드러내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오직하면 그 먼지방에서 홀로 이 총회에 참여했을까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늘 여성들의 노동은 무임금이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이들의 노동은 늘 하잘 것없는 가벼운 것으로 취급되다보니 여성의 빈곤은 늘 여성들의 개별적인 문제인냥 도외시 되어온게 사실이다. 그러니 “빈곤을 보이는 것으로 그리고 관계를 천천히 풍요롭게” 라는 구호는 바로 지금 아시아여성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스스로의 말걸기에 대한 시작으로서 모두에게 유의미한 구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지위가 달라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나혼자만의 성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님을 적어도 이곳에 모인 여성들은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하나 이날 총회의 재미를 더해준 것중 하나는 요요기공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이치무라씨의 발언이었는데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돈때문에 싸우고 권력과 폭력이 야기되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는데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일을 적게해도 우리사회는 너무나 먹을 것이 남아돌고 입을 것은 천지다. 그것을 나누며 살 수 있다면 구지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하는가라는 이야기였는데 이주제를 가지고 많은 여성들이 흥미로운 토론을 하게되었다.

가난을 몰라서 그런거다 난 가난이 싫어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했다라면서 그녀의 발언에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부터 이제껏 열심히 일만했지만 결국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걸 보면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간다라는 말까지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만일 우리였다면 우리사회의 많은 여성들은 또 어떻게 이러한 물음에 답변을 할지 궁금해지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열심히 살았다고 열심히 일만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에도 만만치 않게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도 빈곤의 여기저기를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고민해본다면 결코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고민은 레드마리아의 고민이기도 하고.

일하는여성들의 전국네트워크는 한국의 여성운동을 모델로 삼으면서 3년전 만들어졌다고 한다. 단위사업장 중심의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한국의 여성운동에 대한 부러움을 말했지만 오히려 난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단위사업장이 아니어도 개개인들이 자신있게 참여하고 스스로의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들의 새로운 조직이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해도 아래로부터의 욕구가 세세하게 수용되지 않는 조직은 이미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매너리즘은 새로운 공기를 수용하기엔 이미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틀간의 이들의 합숙에 참여하면서 많은 공부가 됐고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예상한대로 물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리고 촬영에 장애가 될 제도와 질서들이 꽤 많다는 것, 결정적으로 말을 직접 못알아 듣는 것 등등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또 한명의 주인공을 발굴해냈고 그와 더블어 영화에 대한 주제가 점점 더 촘촘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흥분이 되기도 한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