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정보2015. 9. 9. 16:33



2015 DMZ국제댜큐멘터리영화제 국제경쟁 부문 상영


상영정보

http://www.dmzdocs.com/program/program_view_2015.asp?p_idx=7&menu=2&category=2


시높시스

한국의 성노동자 연희는 일본성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일본의 야마시타 영애는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가 운동에서 배제됐던 과정을 강의하기 위해 교토로 향한다. 한국의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출판하고 위안부할머니들에게 고소를 당한다. 르뽀작가 가와다 후미코씨는 오키나와에서 위안부생활을 했던 배봉기씨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은 성노동자들과 피해자도 될 수 없었던 매춘부출신의 위안부 문제가 교차되며 영화는 기억에서 사라진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춰낸다.


기획의도

나는 전작인 레드마리아를 만들면서 많은 성노동자들을 만났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사회에서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그들을  곁에 있는  사람으로 마주하게  시간이었다. 어떤이는 싱글맘으로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일을 한다 했고,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시작했다가 지금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일이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도 했다.

 

 성노동자에 대해 흔히들 상상하는 인신매매나 피해자 프레임으로는 담아낼  없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당시 나는 카메라에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담을 수가 없었다.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지면서 카메라가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연락이 끊겼다. 뒤늦게 누구는 단속을 피해 호주로 갔으며, 누구는 안마시술소로 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누구는 성매매 쉼터로 들어갔다가 결국 다시 다른 업소들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자신이 성노동자임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성노동자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춘이  사회에서 무엇이관데 이들이 범죄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료를 찾던 , 매춘에 대한 낙인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많은 분들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직업 매춘부였던 위안부들은 이후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가난한 부모에 의해 유곽으로 팔려갔다가 위안부로 가게  사람도 있었고, 결혼까지 하고도 취업사기로 끌려간 분들도 있었다. 또한, 가해국 일본에도 많은 위안부 여성들이 있었지만,  모든 분들은 매춘부라는 이름에 가려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불리지 못하였다.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성노동자와 피해자조차   없었던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  아이러니한 두 가지 문제를 직면하면서 나는 매춘혐오가 만들어내는 이중잣대에 놀랐고,  이야기를 계속 쫓아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중잣대의 윤리가 실상 많은 여성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독 본인의 엄마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에서도 발견할  있었다. 여성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잣대를 벗겨내고 사실을 직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상영시간표

9/18(금) 18:00 메가박스 파주출판단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9/20(일) 15:30 메가박스 백석 (상영 후 아티스트 토크)

9/23(수) 12:30 메가박스 백석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4. 10. 4. 13:02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경순 감독 대담회 "다큐멘터리,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살기 위한 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진영 님의 글입니다 :D







신나는 다큐 모임과 인디스페이스가 함께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하 한다감)이 김태일, 태준식 감독에 이어 세 번째 대담회를 열었다. 9월의 감독은 경순. 모더레이터로 영화평론가 변성찬,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 김보람이 패널로 함께했다.

한다감은 오랜 시간 묵묵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온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을 다시 봄으로써,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비평의 영역을 발굴하며,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기획이다.

9월 경순 감독전에 상영된 영화는 <민들레>(199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쇼킹패밀리>(2006), <레드 마리아>(2011), 이렇게 4편이다. <레드 마리아>의 상영이 끝난 후 대담회가 시작되었다.



- <민들레>(1999):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진행한 농성을 다뤘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4): <민들레>에 이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내부적 문제점들을 다뤘다.

- <쇼킹패밀리>(2006): 세 여성의 삶과 시선을 통해 한국의 가족주의를 신랄히 비판했다.

- <레드 마리아>(2011): 필리핀과 일본, 한국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묻는다.




▲ 대담회 참석자. 왼쪽부터 변성찬 영화평론가, 경순 감독, 김보람 감독




변성찬: 먼저 경순 감독이 이번에 상영된 영화 네 편을 고른 이유와 각 작품을 하며 고민했던 점에 대해 듣고 싶다. 그리고 김보람 감독의 소감도 함께 듣고 싶다. 오늘 상영되었던 <쇼킹패밀리>, <레드 마리아>에 대한 관객의 질문도 받을 예정이다.


경순: 작품을 선정할 때, 내가 영화를 만들며 느꼈던 문제의식과 영화의 내용, 형식에 있어서 가장 이야기하기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초반 두 편의 작품은 공동연출이었고 후반 두 편은 단독작업으로, 골고루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그 전에 소위 말하는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되었다. 책임감으로서의 운동보다 내 삶의 모습들을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영화 <민들레>가 나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다. 운동을 한다는 것과 영화를 한다는 것이 내 안에 혼재했던 시기였다. 영화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제작에 굉장히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했고, <빨간 눈사람>을 같이 했던 최하동하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시기에 배웠던 것들이 이후 영화를 만들 때 초석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공적이면서 사적인 관계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에 녹여내는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해 막연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며 많이 정리되었다. 이후 <애국자 게임>부터 이어지는 나의 영화는 내가 궁금한 주제, 질문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영화의 주제가 되었다. 나머지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과 차차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 질문하고 있는 김보람 감독




김보람: 경순 감독을 남몰래 정말 좋아해왔다. 그래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4편의 작품을 연달아 꼼꼼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경순 감독의 작품을 보며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경순 감독 작품을 보며 ‘이 작품을 만든 감독은 정말 유쾌한 사람이고, 인터뷰 대상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대상들이 감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특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카메라가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거리낌 없이 따라붙고, 끝까지 쫓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하기 꺼릴 만한 것들도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레 말하는데, 이런 관계는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감독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도 <독립의 조건>을 연출한 후 마음고생을 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채 타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경순 감독의 작품들은 이후 작품에 이전 작품에서 했던 고민이 나오고, 이전 작품에서 이후 작품에 대한 힌트가 나오기도 한다. 한 편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필요는 없겠다, 나중의 작품을 위한 기반으로 가져가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위로를 얻었다. 그리고 경순 감독의 작품에 담겨 있는 고민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레드 마리아> 속 여자들은 개개인의 투쟁을 하고 있다. 사실 그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 큰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10명의 주인공이 등장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절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10명을 만나고 촬영할 때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경순: 내가 가진 질문의 가장 밑바닥은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굴러가는 것일까’이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그것이 궁금했고, 그것이 출발이었다. 영화를 한 편 만들 때, 집중은 하지만 질문이 다 풀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 영화에 사람도 많이 나오고 이야기도 많이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스타일로 찍고 싶어서 그랬다기보다, 하다 보니 내 영화가 이렇더라. 

나한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공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 영화를 찍을 때 내가 또 다른 삶을 경험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작 기간 동안 많이 놀고 그 사람들과 더불어 지낸다. 오늘 오기 전에 <레드 마리아>에서 만났던 이치무라에게 한국에 온다는 메일을 받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니까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 나처럼 다큐멘터리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영화가 자신의 삶에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고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보여주는 즐거움이 아닌 나 자신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또한 내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찍으면서 알아가려고 했다. 늘 무지(無知)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그래서 내 영화를 보면 영화적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형식적 측면은 없어도 나의 고민을 풀어가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실험 아닌 실험이 되었고 항상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질문에 대답하는 경순 감독




변성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나타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김보람 감독이 질문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천부적인 뻔뻔함인 것 같다.(웃음) 한 감독의 스타일에는 자신의 성격과 기질, 체질과 문제의식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한국의 의미 있는 다큐를 보면 개인적 성격이나 작품 속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극단적인 낯가림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을 통해 굉장히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전한다. 그래서 부러워는 하되, 꼭 따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웃음)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는 감독의 기획과 실제 촬영 사이의 타협,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표현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다. <쇼킹패밀리>는 원래 출연하기로 한 인물이 5명이었는데 3명으로, <레드 마리아>는 원래 3개국 12명이었는데 10명이 되었다. 각 영화에 만약 원래 기획한 분들이 다 들어갔다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포기한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왜 포기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경순: 다른 감독들은 자신이 찍으려는 인물을 미리 확정한다. 그 인물에 대해 조사하고 파악하고 그 인물에 맞는 세팅을 한다. 나는 그게 조금 싫었다. 어떤 한 사람을 통해 이슈화할 수는 있지만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나는 100명이면 100명이 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해도, 그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것들을 채집한다. 그런 과정에서 깔끔함을 포기했고, 내 영화는 거칠다. 또 나의 방식으로 영화를 찍기에는 많은 스텝과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카메라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레드 마리아>는 방대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대담을 하고 있는데, 종로에서는 누군가 술을 마시고 있고, 필리핀의 누군가는 자고 있고 이런 식의 동시성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정말 담고 싶었던 사람은 막판에 쓰지 못했는데, 그런 부분은 정말 불가항력인 것 같다. <쇼킹패밀리>는 처음부터 5명으로 밀고 나가다 결국 3명이 되었다. 빠진 두 명 중 한 명은 단골 술집의 아는 언니였다. 이 분이 조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차마 그 진실을 드러내지 못했다.(동성애 관련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얻은 노하우는 설득해서 될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찍은 영상을 내보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획과 다른 현장 속에서 계속 구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변성찬: <쇼킹패밀리>에서 빠진 두 인물은 한 명은 동성애, 다른 한 명은 성노동과 관계된 사람이었다. 결국은 영화에 담지 못했던 이유는 영화를 통한 커밍아웃의 현실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두 번째 분에 관해 갖고 있는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은 <레드 마리아>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레드 마리아> 속에서 빠진 한 분은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던 분이라 영화가 나가면 살해 위협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빠졌다고 들었다. 나머지 한 분은 누구인가.


경순: 우리 제작진 중 한 명을 넣으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찍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엮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완벽한 기획을 하고 간 것이 아니어서 그 모든 이야기들을 묶을 수 있는 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한 과정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편집할 때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잘라냈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리타 할머니의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4번에 나눠서 나왔는데 실제로는 한 번에 찍은 것인가. 그리고 처음에 할머니는 영어가 아닌 팜팡가어를 하는데 어떻게 소통했는지 궁금하다.


경순: <레드 마리아>는 원래 인터뷰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말라야 롤라스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듣고 싶었다. 비춰지는 것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리타 할머니께 작정하고 여쭤보았다. 영어-팜팡가어를 통역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할머니가 언짢거나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할머니도 우리를 믿어주시고 실제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서 리타 할머니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끔 네 번에 나눠 배치했다. 그 인터뷰는 세 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 마지막 발제를 하고 있는 변성찬 영화평론가




변성찬: 경순 감독은 운동하면서 가졌던 집단적 대의와 개인의 구체적 삶 사이에 괴리가 있고, 긴장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생기는 갈증을 달리 해결할 방법은 없고 그런 화두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 그것이 경순 감독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질문인 것 같다. 경순 감독이 자료에 썼던 질문인 ‘왜 진보 운동은 진보하지 않는가.’ 이 질문은 그녀의 여성주의적 질문과 뗄레야 뗄 수 없다. <민들레>를 다시 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작품이었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이야기를 담는 듯했는데, 카메라가 정작 담고 있는 것은 어머니들의 백스테이지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표면적 주제는 의문사 연작인데 그 작품 안에서 가장 특이하게 다가오는 순간은 그 주제와 카메라가 약간 빗겨나갈 때였다. 대의 아래 놓쳐지는 것들의 대표적인 하나로 여성수사관이 목표와 성과 아래서 사퇴 압력을 받았다가 버티고 이런 현실을 잡아내는 순간이 있다. 이는 아까 말했던 집단과 개인의 문제와도 연관되며 다음 작품인 <쇼킹패밀리>와 <레드 마리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레드 마리아>와 <쇼킹패밀리>에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레드 마리아>는 리타 할머니의 표면의 말 이면의 속마음을 붙잡아내는데 성공했고, 그것이 이 영화에 굉장히 큰 의미와 동력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반면 <쇼킹패밀리>는 처음에 나왔던 아줌마들의 막춤이 후반부에 합을 맞춘 자기 퍼포먼스와 시각적 대조를 이루는데 그것이 대상화된다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를 충분히 기다리고 듣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면 <쇼킹패밀리>에 유쾌함은 있는데, 통렬함은 없는 것 같다. 경순 감독의 영화적 화두는 적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 못지않게 늘 우리 자신의 성찰이 항상 섞여 있고 공존해 왔는데, <쇼킹패밀리>의 경우 그것이 느슨해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순 감독의 문제의식에 근본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이후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는 입장에서 우려도 된다. 출발할 때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는데 적당히 봉합하는 것이 영화적 수사법으로 상투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 감독의 의견을 듣고 싶다.


경순: 내가 어떤 사람을 찍었는가에 따라 타협이냐 봉합이냐가 결정된다. 나는 전지전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졌다. <쇼킹패밀리>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주변의 스텝들이 같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이 정도해서 마무리 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봉합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으로는 <쇼킹패밀리>가 착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분노하는 사람들은 많더라.(웃음) 우리가 보는 것 이상으로 출연했던 당사자들은 굉장히 재고 따지고, 자신 있게 흔쾌히 이야기했지만 뒤돌아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아마 그런 점이 나를 그런 방향으로 가게 했던 것 같다. 덕분에 영화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는데 나 개인적인 불만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게끔, 자신의 이야기를 활용해 굉장히 쉬운 텍스트로 다가갔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원래 생각했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있었고, 영화가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었다. 그래서 <레드 마리아>를 하게 되었고, 그마저도 개운치 않아서 <레드 마리아2>를 하고 있다.(웃음)


변성찬: 나도 그런 느낌이다. 모성 신화라는 것이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성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문제다. 이 영화는 모성 신화를 내면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불안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착한 영화가 되었고, 그 빈틈을 자기 퍼포먼스로 메꾸고 있는, 그곳에 멈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퍼포먼스 장면들은 굉장한 재능인데 그냥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다.(하하)



변성찬: 현재 <레드 마리아2>를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대한 소개와 마지막 인사를 부탁한다. 김보람 감독도 함께한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다.


김보람: 두 분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감사한다.


경순: 요즘 <레드 마리아2>를 작업하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이 이야기가 이렇게 불편한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아직 우리가 이 정도인가’ 라는 생각 때문에 조금 우울하기도 하다. 영화를 만들며 나는 늘 즐기는 편인데, <레드 마리아2>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다른 영화와 분위기가 다르다. 미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불편해서 조용히 작업 중이다.(웃음) <레드 마리아2>가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나 역시도 궁금하다.


변성찬: <레드 마리아2>는 이전까지 경순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기대를 해 본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10월에는 홍형숙 감독이다.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경계도시>, <경계도시2>가 상영된다. 한다감은 격주 월요일에 2편씩 총 4편의 영화가 상영되며, 두 번째 상영 후 대담회가 열린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6000원이다. 대담회 참석자와 주제는 매월 첫 번째 상영 전, 인디스페이스 홈페이지와 신나는 다큐 모임(http://cafe.naver.com/shindamo)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서출처_ http://indiespace.kr/2036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9. 18. 00:48

영화를 만들면서 한번도 그간 만들었던 작품들을 돌아보거나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신다모의 주최로 감독전이라는걸 하게 됐고

원고를 써야했다.

상영할 영화 4편을 감독이 직접 정했고

영화를 선정하면서 내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구나 

새삼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4편의 영화를 선정한 이유를 써보았다.


작품 선정 이유


1. 민들레/1999년

 첫 장편이면서 최하동하 감독과 공동연출작이었던 <민들레>는 나에게 첫작품임과 동시에 영화제작에 무지했던 나에게 일종의 영화학교와 같은 역할도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실 그 당시 <민들레>와 함께 <애국자 게임>을 동시에 찍고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많은 것을 이  두 영화를 만들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졌다. 아마도 영화를 만들면서 경험하게 되는 생존의 문제부터 영화적인 고민까지 최악의 조건과 최선의 선택을 수시로 결정해야만 했던 당시의 열악했던 조건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열악하니 모든 것을 몸으로 때워야 했던 시기.다시 그 상황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당시의 경험들이 이후 영화를 만드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것 같다. 영화적인 스타일도 인물에 대한 고민도 그리고 편집에서의 중요한 지점들을 그당시의 고민에서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예를들어  <민들레> <애국자게임>은 서로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졌지만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각각 다양한 버전으로 편집본이 나오기도 했었다. <민들레>가 최종본으로 나오기 전에 나레이션을 넣어보기도 하고 소제목을 넣어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편집과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촬영의 컨셉과 주제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끼게 됐다. 특히 <민들레>는 유가협(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죽은자식들의 명예와  진상규명을 위해 투쟁하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의 이야기다 보니 대상과의 관계나 거리 유지가 영화에 미치는 상관관계를 많이 깨닫게 해준 영화였던 것 같다. 노구를 이끌고 거리로 나가 전경과 싸우고 노숙투쟁을 일상처럼 하고 죽은 자식들의 이름이 나올때마다 눈물과 분노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들에게 카메라는 자칫 이성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대상을 이해하면서도 내 시선을 고수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그때 온몸으로 체험을 했던 것 같다. 죽은 자식들의 무게와 사회적 위치가 다 똑같지는 않았고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는 분들과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부모님들간의 이견도 있었다. 그리고 다 다른 가정사 속에 투쟁을 하시니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건 마치 내가족의 속내를 들여다 보듯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편집하는 과정은 바로 그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 영화를 우리가 왜 만들었는가에서 답이 나왔던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유가협의 부모님들. 함께 싸우다 죽은 동지들을 우리는 잊고 있었는데 여전히 죽은 자식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그분들을 뵜을때 느꼈던 깊은 부채감과 존경스러움. 영화는 그 시작의 느낌을 살리는데서 타협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소재로서의 영화를 찾는 건 내 영화에서 사라졌고 늘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영화를 찍는 모티브가 됐다.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세번째 영화면서 혼자서 연출을 시작한 작품이기도하다. 공동연출일때는 늘 의논하던 상대가 있었는데 이 작품은 스텝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영화를 찍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또 다른 좌충우돌 경험이 많았었다. <민들레>를 찍을 당시 담지 못했던 죽은자들의 동지를 찍고 싶었었는데 부모님들에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까지 담아내기 힘들었다. 결국 때를 기다렸는데 때마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민주화운동 당시 죽거나 의문사했던  이들의 '동지'였던 사람들이 민간조사관으로 참여를 했다. 나는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많은 사람들이 진정 만들고 싶어했던 삶이나 세상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위원회라는 공적 공간에서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조사과정과 함께 그들의 생각을 담고 싶었었다. 하지만 위원회에 그들만 있는건 아니다.대통령직속 기관이었고 수사관과 헌병대 검사 변호사 그리고 많은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부담없이 다니려면 그곳의 일원처럼 행동해야 했고 늘 신속해야 했다. 촬영에 대한 기술도 부족했지만 영화적인 미학을 고민 할 겨를도 없었던 것 같다. 찍는 동안 생각했던 건 일단 위원회의 모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기록을 충실히 하자였고 또하나는 긴장감을 위해 들고 찍자는 거였다. 다행히 나는 많은 조사과정에 참여 할 수 있었고 수사관들의 협조도 잘 얻어냈지만 3시간 넘는 조사과정이나 인터뷰 등을 무식하게 들고 찍은 많은 장면들은 지금도 봐주기 힘들만큼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무모함 덕에 기동성 있게 현장을 포착해 낸 장면들은 결국 영화를 편집할 때 소중한 소스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관찰과 주관이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많이 깨닫게 된 것 같다. 그건 누가 찍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찍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상과 사물이 다른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 이었다. 나는 세번째 영화를 찍고서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 사실을 체득하게 된것 같다.

 

3. 쇼킹패밀리/2006년

 <쇼킹패밀리>는 처음으로 스텝들과 작업을 한 작품이면서 처음으로 일부기는 하지만 제작지원을 받아 하게된 작품이다. 제작비를 위해 스텝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작품이라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쇼킹패밀리>는 가족주의를 유쾌하게 비판하고 싶다는 출발이었지만 역시 가족문제는 사적이었고 예민한 이야기인지라 어떻게 찍고 담아낼 것인지가 관건 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듯이 ,다른 가족사와 비슷하지만 다른, 각각의 복잡한 이야기를 영화속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영화속에서도 다르지만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다른 시선이 필요했다. 일단 제작진을 포함해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해야 겠다고 생각 했고 영화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촬영은 일관된 컨셉보다는 다양한 시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기로 했다. 카메라를 처음 잡아보는 조연출에게 카메라를 가르쳐서 찍게 하고 딸 수림이가 찍은 셀카나 스텝들이 찍은 셀카 등 촬영본에 원칙을 두지 않았다. 거칠지만 생생한 현장이 중요했고 다른 시선들이 많을 수록 좋았다. 주인공도 처음엔 세명이 아니었다. 사양한 사례로 생각한 인물은 5명정도 됐는데 결국 사적인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 했던 두 명이 막판에 빠지면서 결국 3명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됐다. 영화에서 빠진 두명의 주인공은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한사람은 동성애와 관련이 있었고 한사람은 매춘을 하면서 집안을 먹여 살렸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 두사람이 영화에 나왔다면 쇼킹패밀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현실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항력의 결과는 매번 영화를 찍을때마다 반복된다. 그리고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계이면서도 묘미라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영화를 찍으면서 밀어부쳐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4. 레드마리아/2011년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몸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기존의 노동에 대한 시선을 다르게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여성에 대한 문제는 잘사는 나라에서도 가난한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여성들의 경로와 함께 국가나 가족이라는 틀로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한 눈에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그 차별의 시작이 바로  여성의 몸 특히 배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일본 필리핀 세나라의 여성들을 찍기로 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나열해 보고 싶었다. 그 나열된 다양한 경험과 직종의 여성들이 결국 하나의 몸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노동에 대한 차별이 바로 여성에 대한 차별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많은 출연진을 생각했기에 그들을 공통적으로 엮어줄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의 일상과 배,그리고 얼굴을 사진으로 담기로 했다. 촬영 포인트는 각기 다른 세나라의 환경적인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공기를 담아내는 문제였던 것 같다. 일본의 이치무라는 노숙자지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풀샷을 많이 사용했고, 필리핀의 그레이스는 가난하지만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대화 장면에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신경을 썼음에도 주인공이 10명이다보니 촬영에 집중된 시간이 주인공에 따라 개별적인 차이가 생겼고 역시 불가항력의 현실적 문제들이 생겨  촬영 소스가 균질하지 못했다. 특히 평택의 성노동자들을 찍을때는 성매매특별법으로 단속이 심해져 카메라로 현장을 많이 담아낼 수가 없었다. 내내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하지만 결국 아쉬움이 다음 영화를 고민하게 하는 출발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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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4. 9. 18. 00:46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느꼈던 지점

 

 

나는 영화를 늦게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을 하면서 늘 대의에 가려진 팩트에 아쉬움과 답답함이 많았었다. 조직과 대의, 집단과 개인 사이에서 운동이 해 낼 수 있는 것들과 놓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 글로써 많이 풀었고 해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야겠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너무 앞서 갔고 늘 관념적이 되었다.나에게는 운동과는 다른 현장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영화는 그런 나에게 새로운 현장이 되어주었고 나는 운동이 놓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가 되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게 뛰어든 영화는 드라마 같은 세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경험하게 해주는 삶의 또 다른 시간이었다. 평소 게으르고 무지한데다 빈둥거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가장 치열한 고민을 하고 가장 생생한 공부를 했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사는  다양한 즐거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싶은 현장을 통해 내가 무엇에 더 관심이 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많이 명쾌해 졌다.

 

처음 <민들레>를 만들면서는 사실 운동에 대한 대의적 미련들이 많이 혼재했던 시기였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었고 창작과 운동사이에서 감독의 포지션이나 시선에 대한 내부적 충돌이 많았던 시기였다. 소박하게 인권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만 컸지 영화가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이다. 더구나 죽은 자식들 앞에 무서움이 없는 유가협의 부모님들과 그분들에게 사회가 부여해주는 도덕적 권력앞에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내가 운동의 대의가 놓치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운동과 영화의 애매한 줄다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나름 다른방식으로 현장과 영화가 연결되는 방식을 도모했던 것 같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영화적 형식과 내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 같다. 물론 늘 부족했고 늘 시도만 했던 것 같기는 하다.위에 언급한 다섯편의 영화는 그런 고민들의 결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하지만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왜 이렇게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왜 세상은 이리도 답답한 것일까. 왜 진보운동은 진보하지 않는 것일까 등등의 질문들은 내영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던게 사실이니 말이다. 때론 가족주의에 대한 질문이 때론 애국주의나 국가주의에 대한 질문들이 늘 나를 창작의 불길로 이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내 영화는 사람이 많고 질문이 많고 여러개의 결들이 겹쳐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다보니 그리됐고 뒤돌아보니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알게된 사실이긴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단순화된 도식을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 그런면들이 자연스럽게 인간을 단순화시키는 생각이나 범주들을 파고들게 만드는 것 같고.

 

하지만 영화라는 세계는 너무 광활하고 담아야 할 이야기들은 넘쳐난다. 여전히 새 술이 필요하고 새 부대도 다시 필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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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상영정보2014. 9. 1. 18:52

제공 인디스페이스 http://indiespace.tistory.com/1980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③] 경순 감독 

다큐멘터리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살기 위한 길” 

통념에 대한 저항과 대안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영화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투쟁과 운동으로서의 기록을 넘어서서 감독의 성찰과 고민을 담아내는 예술로서의 영화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바탕에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감독들의 노력이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성과에 비해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인정과 회고, 비평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오랜 시간 묵묵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온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을 다시 봄으로써,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비평의 영역을 발굴하며 한국의 다큐멘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경순 감독은 최하동하 감독과 함께 독립다큐 제작 집단 “빨간눈사람”을 결성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위해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진행한 농성을 다룬 <민들레>(1999),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록인 <애국자 게임>(2001)을 “빨간눈사람”의 이름으로 제작했습니다. 이후, <민들레>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과 내부적 문제점들을 다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 세 여성의 삶과 시선을 통해 한국의 가족주의를 신랄히 비판하는 <쇼킹 패밀리>(2006), 필리핀과 일본, 한국 세 나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묻는 <레드마리아>(2011)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빨간눈사람”시절부터 현재까지 경순 감독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민족주의”, “가족주의”, “여성에 대한 인식” 같은 사회 통념들에 대한 거침없는 질문과 비판입니다. 15년이 훌쩍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말처럼 작품을 한다는 것이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살기 위한 길” 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경순 감독님이 직접 선정하신 네 편의 작품- <민들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쇼킹 패밀리>, <레드마리아>를 함께 볼 예정입니다. 9월 29일 월요일 <레드마리아>상영 후 진행되는 대담회에서는 경순감독과 함께 변성찬 영화 평론가,<독립의 조건> 김보람 감독님을 모시고 지속적으로 사회의 통념들을 깨는 이야기들을 해 오실 수 있었던 내적 동력, 최근 여성이라는 소재로 집중하고 계신 이유, <애국자 게임>이후 이어져오는 다양한 형식적 시도 등 경순 감독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여러 고민과 질문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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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9월 15일(월) 18:00 <민들레> | 20:0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9월 29일(월) 18:00 <쇼킹 패밀리> | 20:00 <레드 마리아> + 대담

● 대담회 참석자: 경순 감독, 변성찬 영화평론가(모더레이터), 김보람(패널, <독립의 조건> 감독)

● 장소 :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 입장료 : 6,000원 (인디스페이스 후원회원/멤버십 무료입장)

● 주최/주관 : 신다모(신나는 다큐모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민들레 Mindullae 

경순, 최하동하 |1999 | 60분


한국의 근현대사는 많은 굴곡을 겪으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노동인권을 외치다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 이들도 있고, 민주쟁취,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학생들도 있다. 이처럼 민주화를 위한 투쟁 속에서 희생된 죽음의 역사는 한국의 지난한 민주화의 과정만큼이나 길다 죽은 이들의 가족은 1986년"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약칭 유가협)를 결성하였다. 그들은 자식들의 명예회복과 이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고, 이제는 자식들에 못지 않은 투사가 되었다. 인권 대통령이길 희망하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 겨울 그들은 "희생자 명예 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각 당사를 찾아다니며 집회를 하고, 농성장을 찾아오는 이들을 대접하고, 하루의 투쟁을 정리하는 회의등..... 농성이 길어지면서 농성장의 생활도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부모님들간의 갈등도 생겨났다. 좁은 농성장 안에서 부대끼는 여러 가지 일상사들도 결국은 죽은 자들의 부모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98년이 다가기 전에 끝날 것 같던 농성은 1년이 넘게 지속되고...마침내 농성 419일째 되던 1999년 12월 2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들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Do People Live For

경순 | 2003 | 111분


유가족들의 422일간의 투쟁으로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한시적으로 설립됐다. 그 위원회에 죽은자들의 동지였던 민간조사관들과 군,경찰,기무사,국정원에서 파견된 공무원 출신 조사관들이 함께 일을 한다.그들의 목표는 진상규명이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다. 미비한 권한과 높은 대의 그리고 그속에 준비되지 않는 사람들의 갈등과 모순.위원회는 바로 우리시대의 얼굴이다. 



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경순 | 2006 | 111분


가족은 늘 개인의 존재를 망각한다. 국가는 자주 그 '가족'을 이용한다. 

그리고 개인은 종종 국가와 가족의 이름으로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다. 이런 가족 안에서 오늘도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20대 세영, 30대 경은, 40대 경순과 혈연 중심의 한국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미국입양아 빈센트의 성장 이야기.



레드마리아  Red Maria

경순 | 2011 | 98분


한국, 일본, 필리핀에는 다양한 직업과 역사를 지닌 많은 여성들이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들 중에서 가사 노동자, 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위안부 등으로 불리는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들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녀들은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은 제각기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한 가지 공통점에 의해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들의 몸과 노동이 그것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노동이 그토록 비슷한 방식으로 ‘몸’에 연결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치게 된다. 사회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노동의 의미’가 그것이다.




경순


Filmography

1999 <민들레 MINDULLAE-Dandelion> DV Cam, 60min.
2001 <애국자게임 Patriot Game> DV Cam, 90min. 
200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Do People Live For]> DV Cam, 111min. 
2006 <쇼킹 패밀리 Shocking Family> DV Cam , color, 111min.
2011 <잼다큐 강정Jam Docu  KANGJUNG>HD,COLOR,104min
2011 <레드마리아 Red Maria> HD, color, 98min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3. 11. 26. 01:25

경순 | 존재의 이유  interview / F.OUND 

2013/05/22 12:10

복사http://blog.naver.com/hhanana/30168384229

전용뷰어 보기

 

Important to Us & Those Who Need_존재의 이유 

경순

 

경순 감독의 영화들은 내가 얼마나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깨지고 아프고 반성하고 고민하고, 한 마디로 그녀에게 매번 함락되면서도 그녀의 영화를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과정이 현재의 나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작 <레드 마리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영화 <레드 마리아>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창녀, 이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로 불리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의 여성들이 다양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벌고, 6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신들의 과거를 밝히고, 부정부패한 정부를 한탄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포착해낸다. 다른 모양, 다른 언어,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그녀들의 몸은 묘하게 하나가 된다.


여성의 몸과 노동의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는 이 사회의 편견과 제도에 물음표를 날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든 것이 여성의 ‘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배’로 돌아갈 때 어쩌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이 사회가 만들어낸 물음표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당연하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영화를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겠지만, 아래의 인터뷰가 어느 정도의 궁금증을 달래 줄 수 있을 것이다.


경순 감독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근하고 따뜻했고 단호하고 의연했다. 거기에 유머러스하기까지 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갖추고 있었다. 올해로 14년째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은 뭐였냐고. 그녀가 얘기했다. “계속해서 질문이 있기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여전히 있기 때문에. 내 속이 답답하니까 뭔가를 계속 찾으면서 그 다음, 그 다음을 해왔던 거 같아요.” 누군가는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냐고,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세상이라는 것이 쉽게 바뀔 물건도 아니고, 또 쉽게 바뀌어버리면 그 또한 재미없는 일이니까. 그들에게 내가 한마디 해야겠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일을 그녀가 하고 있다고.

 

 

#1. ‘레드 마리아’들의 이야기


여성의 몸과 노동을 이번 영화의 화두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쌓여있었던 거 같아요.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들과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잣대들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이 계속 답답한 갈증처럼 남아 있었어요. 21세기 가부장 사회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이 있어요.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노동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보통 노동이라고 하면 임금노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걸 해체해서 비정규직이니, 가사노동이니 윤리적으로 얽혀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러면서 몸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어릴 때부터 배에 꽂혀있었어요. 목욕탕 가면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아줌마, 언니들 배를 보는 걸 재미있어했어요.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봤는데, 나이가 들면서 배에 감정이 하나씩 하나씩 쓰여지더라구요. 생리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도 하고, 배로 하는 일이 많아진 거 같은데, 왜 여자들은 배를 부끄러워할까. 왜 비밀스럽게 숨겨야 하고, 은밀해야 하는 걸까. 반대로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억압받고 벗어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스스로도 그 벽을 못 깬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출발을 다시 해야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여자와 남자가 다른 건 여자는 가슴, 남자는 자지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자지와 보지인 거잖아요. 보지의 출발은 자궁이고, 그 자궁을 감싸고 있는 것이 배인 건데. 이와 비슷한 형태로 여성의 노동 역시 편견 속에서 고스란히 사회의 노동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려면 몸 얘기를 같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인물들을 한국여성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일본, 필리핀으로 확장시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영화) <쇼킹 패밀리> 상영으로 일본에 6번 정도 다녀왔어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선입관, 경제대국이기 때문에 여성의 삶도 우리보다는 상황이 나을 거라는 막연함을 갖고 일본에 갔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아닌 거죠. 우리보다 훨씬 더 개인의 운신의 폭이 좁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적은데 해결돼야 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인 거죠. 경제가 발전했다고 해서 과연 여성의 지위도 그만큼 발전했나, 겉모양만 다를 뿐이지 그 속의 내용들은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일을 한다는 건 절망적이다. 일과 노숙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노숙을 선택 하겠다”는 이치무라의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영화에는 안 썼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 이치무라의 이야기가 컬쳐 쇼크라는 얘기를 하면서 “니가 가난을 몰라서 그런다. 우리가 1970년대에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일 했는 줄 아냐. 니가 어떻게 노동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고 하시더라구요. 이 총회가 한국으로 옮겨왔어도 상황은 비슷했을 거 같아요. 이치무라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을 했던 건 내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 왜 노동을 하는지, 노동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을 이치무라가 던져준 거잖아요. 노동을 하는 여러 여성들 사이에 노동을 하지 않는 이치무라를 집어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구요.

 

성노동자와 위안부 할머니를 같이 놓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돌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쇼킹 패밀리>를 만들 즈음에 외국에서 성노동자로 활동하는 친구를 소개 받았어요. 친구가 “이 친구는 성노동자야”라고 소개를 해주는데 “어머 반갑다”가 아니라 “어… 그래…” 이렇게 된 거죠. 그날 집에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니까 내 행동이 나 스스로도 당황스럽더라구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내가 성노동자에 대해 깊숙이 고민을 안 해본 거지.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편견이 생긴 이유가 뭘까. 그 끝 지점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내 몸을 부끄러워한다는 건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은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이 사회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받아요. 남자 아이가 고추를 내놓고 다니는 건 아무 말 안 하는데 여자 아이는 꼭 팬티를 입히거나 기저귀를 채우죠. 돌 사진만 해도 그래요. 남자 아이들은 고추를 내놓고 사진을 찍잖아요. 거기서부터 이미 여자와 남자가 조심해야 될 것들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이것이 한 쪽의 성노동자와 한 쪽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예민한 얘기라고 해서 덮어둘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고민으로 안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여성들을 만났잖아요.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일부분일 거 같은데 만나면서 어떤 걸 느끼셨어요? 
자라면서 보고 겪고 만났던 사람들을 일본과 필리핀에서 다시 만난 거 같았어요.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길게 꿰면 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필리핀 톤도의 그레이스가 일본의 조순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좋았던 건 다들 너무 따뜻했다는 거예요. 마치 내 이웃, 언니, 동생, 엄마 같은 분들이셨어요.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그걸 벗겨놓고 보면 여자들의 수다나 삶, 고민은 비슷한 거 같아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역사성, 거기서 나오는 습관이나 버릇만 다를 뿐인데 우리는 왜 자꾸 그것만 크게 얘기를 하고, 굉장히 다른 것처럼 바라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2.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감독님 영화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거 같아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기도 하고, 충격을 주기도 하구요. 세상을 보는 감독님만의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쭉 생각해왔던 방식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안에 고스란히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어떤 거에 통제받지 않고 자랐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각각 재혼을 하셨는데, 사실 그분들이 괴로웠던 삶을 빼면 저는 그게 좋았어요. 왜냐면 나한테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근데 남동생은 다르더라구요.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근데 저는 그걸 굉장히 자유롭게 느꼈거든요. 어릴 때 보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행동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저는 그런 스트레스를 안 받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가 보고 싶은 거 보고, 그래서 경험의 폭이 조금 넓었던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 날라리 친구도 있고, 모범생 친구도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경순아 너는 친구 따라 강남을 어느 쪽으로 가는 거니?” (웃음) 그 친구들 자체가 나에게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해줬죠. 커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문화운동을 하든, 노동운동을 하든 어떤 곳에 있든지 간에 그냥 내 기질대로 살아왔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얻고, 그것들을 이미지로 만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거죠. 어쩌면 그게 제 나름의 영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

 

통제가 없다는 건 본인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무언가를 취하고 버려야한다는 건데, 보통은 부모가 그 역할을 해주잖아요. 어린 아이가 혼자 알아서 취하고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게 부모하고의 관계 속에만 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구들이 다 내 바운더리인 거죠. 보호나 통제라는 것이 좀 더 확대됐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할 때 부모가 얘기를 안 해줘도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듣기도 하고, 아니면 옆집 할머니가 얘기해주시기도 하고, 그분들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거죠. 그 역할을 부모만이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건데, 저는 그들이 갖고 있는 스스로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판단의 힘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그러지.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근데 학교에 있는 시간만 학생은 아니거든. 그 친구들도 인터넷 하고, TV 보고,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죠. 자신들을 보는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 사고를 하는 건데 학교 중심으로 통제를 하는 방식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가족으로 봤을 때는 더 심각한 거지. 어디 가서 못된 짓 하면 엄마 욕먹는다, 그런 방식이 너무 웃긴 거죠. 그건 걔 문제지, 내가 왜 욕을 먹어.

 

근데 그건 저도 아직까지 못 벗어나는 말 중에 하나인 거 같아요.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욕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 다닐 때 인사도 잘하고, 행동도 바르게 하려고 하거든요. 
그게 최면인 거잖아. 씨족사회에서 연대하던 방식이 몇 백 년, 몇 천 년이 흘러서도 똑같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반복된다는 게 웃긴 거죠. 제가 지금 고등학교에서 영화 관련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고민을 안 해요. 자기가 여자라는 것,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것에 대해. 왜냐면 계속 보고 듣는 건 수능에 관련된 거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들을 보면서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없는 거죠. 근데 얘기를 하나씩 꺼내놓으니까 우리 때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엄마가 여동생 낳았을 때 할머니가 되게 실망했고, 남동생 낳으니까 너무 좋아했다.  

 

아직도 그렇단 말이에요? 
그런 집이 있다니까. 여자이기 때문에 불편한 것들을 텍스트로 작업하는 걸 했는데 내가 보여줄게요. 설날 용돈 차등 분배, 항상 왜 남자가 리드를 해야 하나, 그게 얘네들도 꼭 좋은 건 아닌 거야. 여자만 집안 살림할 때, 얘는 촬영감독을 하고 싶나 봐. 촬영은 남자들이 하는 거라고 할 때, 험한 일 못하게 할 때, 생리를 한다는 것, 고등학교 2학년 애들이 이런 얘기들을 한다는 거죠. 이런 얘기가 정말 자유롭게 오가면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건데 얘기를 못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래서 내가 ‘웬일이니, 나랑 이 아이들이 몇 십 년 차이인데’ 그랬어요. 그게 어렸을 때부터 바뀌지 않고, 대학 들어가고 성인이 되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니까 50대든, 40대든, 30대든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 생활이 달라졌기 때문에 우린 윗세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문화적인 코드가 다른 것뿐이에요.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 얘기 들으니까 무섭네요.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 컬쳐 쇼크 아니에요?

 

 

 

 

#3. 영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삶 

 

대학 졸업하고 노동단체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졸업을 한 건 아니고 4학년 중퇴를 하고, 시 쓴다고 깝죽대다가 문화운동을 하게 됐어요.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현장 문화운동을 하다가 지하철노조에 들어갔죠. 활동가 간사로 일을 했어요. 근데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가의 역할이 양에 안 차더라구요. 뭔가 좀 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서 이야기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로 전업하게 된 거죠.

 

얘기되지 못하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렇죠. 대의 속에 가려 있는 얘기들. 노동운동을 한다고 해서 다 미화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노동운동 내에도 차별과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 건데 그 안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뜬금없는 얘기가 되니까. 그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그 얘기들을 제대로 하려면 문화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될 것 같았고, 시는 양이 안 차서 영화를 선택했던 거 같아요. 근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영화를 전공하신 것도 아니고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던 1990년대 후반의 독립영화계가 지금보다 환경이 좋았던 것도 아닌데, 영화 만들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오히려 그때는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서울인권영화제는 당국의 탄압을 받으면서 열렸고, 인디포럼은 상영장에서 쫓겨나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상황도 벌어지고. 독립영화를 한다는 느낌이 말 그대로 독립군 같았어요. 그리고 워낙 사회 분위기 자체가 억압되는 분위기였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창구로서 영화를 접했다면, 영화를 접하면서 내가 토해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영화화하는 과정이 점점 재미있어졌어요. 

 

15년 정도 영화를 만들어오셨잖아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드세요? 
전혀 안 들어요. 언젠가 홍형숙 감독이 (영화) <경계도시 2>를 만들고 나서 산 중턱쯤 온 거 같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했는데 나는 늘 영화를 만들 때마다 바닥에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늘 신인 같은 느낌. 이런 건 있죠.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것들이 덜 당황스러워진다든지, 좀 더 요령이 생긴다든지, 근게 그걸 갖고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내가 그 역할을 못하면 그 작품이 정말 별로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늘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게 창작의 매력이죠.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잘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창작 세계에선 작품으로 확인되는 거기 때문에 늘 신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긴 세월 동안 영화를 계속 할 수 있게 만든 힘은 뭐였어요? 
계속해서 질문이 있기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여전히 있기 때문에. 내 속이 답답하니까 뭔가를 계속 찾으면서 그 다음, 그 다음을 해왔던 거 같아요. 정말 숨차게 헐떡헐떡 거리면서 10년이 지나갔어요. <레드 마리아>를 하면서는 좀 여유 있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몸이 안 받쳐 주는 거지. (웃음) 나한테 체력은 큰 무기고 재산이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하면서 스스로 변화된 것들이 있으세요? 
그럼요. 저는 영화 만드는 기간 동안 매번 새로운 삶을 사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성장한다고 느껴요. 영화 자체로 성장을 했다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깨지고 고민하고 느낀 것들이 진짜 나를 성장하게 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연적으로 공부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나마 영화를 만들면서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매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질문들과 사람들이 궁금해요.

 

 

#4. 우리가 사는 세상


수림이(경순 감독의 딸)는 올해 몇 살이에요? 
올해 드디어 스물이 됐어요. 많이 컸죠.

 

진짜 많이 컸네요. <쇼킹 패밀리>에 출연할 때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지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갔어요. 자기가 돈 벌어서.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경제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밥 먹듯이 얘기했는데, 실제로 수림이도 그렇게 생각을 하더라구요. 필리핀에서 돌아온 날부터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서울에 있는 1년 동안 자기가 번 돈으로 나보다 더 떵떵 거리면서 살았어요. (웃음) 근데 자기도 고민이 많겠지. 얼떨결에 나 때문에 필리핀에 딸려 갔다가 혼자 있는 기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한 거 같더라구요. 내가 그걸 보면서도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는 구나 그랬어요. 자기의 삶이나 자기의 몫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엄마를 믿었다가는 자기 인생이 구겨질 거라는 걸 아는 거지. (웃음) 앞으로도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수림이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수림이 키우면서 힘든 건 하나도 없었는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어려운 게 너무 많았지. 얘를 왜 안 가르치냐, 얘가 왜 아직도 말을 못 하냐, 얘가 왜 아직도 오줌을 싸냐. 심지어 목욕탕에 애를 데리고 가도 생판 모르는 분이 와서 막 뭐라고 하는 거야. 다 컸는데 기저귀 채운다고. 아까 얘기한 거처럼 아이가 못하면 부모가 욕을 먹는 그런 상황들과 무수히 싸우는 거죠. 그런 시선이 수림이를 불쌍한 애처럼 만드는 거에 대해서 싸웠고, 주로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던 거 같아요. 수림이가 나를 피곤하게 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친구는 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 말썽피우면 피우는 대로, 미우면 미운대로 그런 재미로 애 키우는 건데. (웃음)

 

왠지 수림이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거 같아요. 
다르지만, 다르게 자랐기 때문에 수림이가 느끼는 편견과 부담이 있어요. 수림이가 필리핀에서 혼자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친구 엄마가 그랬나봐. “넌 졸업하고 어느 대학 갈 거니, 순서가 어떻게 되니?” 근데 얘는 대학 갈 생각도 없는데 “어느 대학 가려구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런 얘길 왜 해?”라고 했더니 안 그러면 너무 피곤하다는 거야. 그러면 너 왜 대학을 안 가려고 하니, 그것이 네 인생에 어떤 문제가 되는지 아니, 그게 너무 피곤하다는 거죠. 그런 어려움들은 언제나 있는 거 같아요. 근데 그것 역시도 수림이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인 거니까. 

 

혹시 살면서 후회하신 일은 없으세요? 
어릴 때부터 후회하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 ‘한 일은 절대 후회 안 한다’는 기조가 초등학교 때부터 성장할 때까지 계속 됐고, 영화를 만들면서도 계속 있었어요. 근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후회하는 맛도 있어야지. (웃음) 누구 약 올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느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거랑 비슷한 예로 자기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있고, 안 쓰는 단어가 있잖아요. 저는 안 쓰는 단어 중에 자괴감이 있었던 거예요. 예전에 한 친구가 영화가 잘 안 풀려서 글을 썼는데 자괴감 어쩌고 하는 거야. 근데 나는 그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신선했던 거지. 도대체 자괴감은 어떤 감정일까,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재수 없다고. (웃음) 나는 정말 궁금했는데.

 

앞으로 후회가 되거나 자괴감이 들면 감독님을 생각해야겠어요. 후회와 자괴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하면서. (웃음) 요즘 약간의 고민이 있는데 제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꼰대’라고 하죠. 남 얘기 잘 안 들으려고 하고, 배배 꼬여있고.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도 느끼거든요. 그렇게 ‘오픈 마인드’를 외치던 애들이 점점 생각하는 폭이 좁아지는 거 같아요. 
나이가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거예요. 나 역시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를 볼 때 똑같이 느끼니까. 끊임없이 긴장해야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 역할을 해야 된다는 말이 불편해요. 잘 못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어른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 긴장하면서 나를 고민하고, 생각해보면 되는 거죠.

 

데뷔 초반과 지금을 비교할 때 세상이 조금 달라진 거 같으세요? 
전혀요.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면 이주여성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고민의 수준이 얼마만큼 달라지고 성장했냐를 보면 그렇게 많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구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여성운동과 여성노동운동이 잘 겹합 되어 있지도 않아요. 그래도 <레드 마리아>를 만들면서 여성들 스스로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자꾸 얘기를 해야 된다, 다른 얘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은 불편한 사람이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단 그 얘기가 너무 공허해지지 않길 바라는 거죠.

 

감독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에요? 
어렵다. 아주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자유로운 세상인 거 같아요. 서로를 통제하는 기준들은 낮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높은 세상. 그게 국가의 법이든 뭐든 간에 뭔가에 대한 기준치는 정말 필요한 기준치가 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양성, 다름에 대해서는 폭이 넓어지길 바래요. 근데 지금 우리는 양쪽 모두 아니잖아요. 다름을 바라보는 폭은 굉장히 낮고, 기준치는 사람마다 다른 걸 적용하려 들죠. 제도나 법이 많이 달라져야 돼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식의 교육과 다른 식의 문화가 있어야 하는 거고. 오늘 앞에서도 많이 얘기했던 거 같은데 저는 여성의 시선이나 여성주의가 중요한 거 같아요. 여성주의 하면 자꾸 남자들과 여자들을 대립시키려고 하는데,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사회를 위한, 사회를 바꾸는 시선인 거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거죠. (웃음) 단 편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상대방도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가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애인이 됐든 간에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수림이도, 그리고 저 역시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issue #21, may 2012, interview
www.foundmag.co.kr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8. 28. 15:21

어제 이대 리더십개발원 주최로 여는 젠더포럼에서 레드마리아를 보고 

여성의 노동에 대한 많은 부분 중 성노동에 대한 이슈를 특화시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내가 메인 발제를 하고 두명의 토론자들(조중헌,김엘리)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는 자리였다.

포럼이나 토론에 익속하지는 않지만 어제의 자리가 기억에 남는건

주제가 성노동이기는 했으나 참여한 분들의 토론문(토론문은 블러그 리뷰 코너에 올려놓았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노동만 떼어서 이야기할 수 없는 맥락이 있는 것을 다들 공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늘 레드마리아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거나 혹자의 리뷰를 보아도

정작 레드마리아가 이야기하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빠진듯 하여 영화를 총체적으로 보는 느낌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어제의 자리가 조금은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야 비로서 레드마리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편견을 조금 덜어내고 이야기되는구나 싶었다.

영화를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묻어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수많은 과정... 그것이 역사고 사건이고 관계고 윤리고 가족이고 노동인 모든 것들이 해명되지 않고서 

어떻게 가부장사회에서 만들어진 현재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틀로만 말 할 수 있겠는가.

문득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하는 과정도 결국은 레드마리아2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연장이 아닌가 싶어

매번 곰곰히 되씹게 된다.


오늘 성노동자 연희와 그의 동무를 만난다.

간만에 밥도 먹고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자리기는 하지만

그녀와 다시한번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얼만큼의 너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지.

그 자리는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그 자리가 편하고 좋은지.

그리고 사실 그런 이야기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수많은 할머니들과도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니 유령과의 만남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살아오는 동안 당신들의 공간은 어느만큼 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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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3. 8. 28. 14:21

< 이화리더십개발원 젠더포럼 토론문 ➁ > 2013. 8. 27.

레드마리아, 성노동자, 여성주의자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레드마리아를 영화관에서 보고, 이번 젠더포럼을 위해 다시 봤다. 처음 영화관을 찾았을 때는 레드마리아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응원의 맘으로 그래서 좀은 흥분한 상태에서 감상했고, 이번에는 여유롭게, 좀은 멍한 상태에서 봤다. 다양한 배꼽모양을 드러낸 배들이 역시나 인상적이다. 여성의 몸은 참으로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여성들의 경험도 다양하다. 나에게 레드마리아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 “과연 여성들에게 일이란?”

일본의 여성들도, 필리핀의 여성들도, 그리고 한국의 여성들도 ‘일한다.’ 일은 임금을 받든 아니든 사람들이 먹고, 낳고, 키우고, 사랑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혹은 느끼며 즐기는 다양한 자원을 제공한다. 뭣보다 여성주의자들이 그동안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공적 영역에서 교환가치를 갖는 상품 생산을 노동으로 정의하는 주류 개념을 뒤집어, 보이지 않으나(엄밀하게 말하면, 사랑과 희생 헌신이라는 명분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서) ‘우리’의 기본적인 생존을 가능하게 한 여성들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돌봄 노동이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케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드러내어 노동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드마리아는 공과 사, 보이는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 생산노동과 재생산 노동, 경쟁사회에서의 과잉노동/남성중심사회에서 착취당하는 노동과 이를 거부하는 저항노동,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이른바 도덕적인 노동과 부도덕한 노동.. 이 모든 노동은 연결돼 있으며, 여성들의 일이며, 여성들은 어디서든 언제든지 노동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그 맥락에 있다. 젠더포럼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 - 성매매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레드마리아는 여성의 일이라는 맥락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합법화냐 혹은 도덕적이냐 와 같은 규범적인 색은 없다. 그냥 여성들이 하는 일이다. 이 지점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많은 사람들은 성매매를 이야기할 때 매우 교훈적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성판매 여성들을 지시하는 여러 언표들이 있다. 더러움, 오염, 불결함,

성매매는 사회적으로 일이라기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혹은 불법적인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내가 <막달레나 집>에서 자원활동을 할 때, 현장출신 활동가님이 시도 때도 없이 “성매매는 합법화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세금도 내고 덜 착취당해한다”고. 혼란스러웠다. 현장출신 활동가님이 말하니 참으로 깊은 뜻이 있으리라 싶은데, 이 말을 내가 일하는 여성단체의 선배들에게 고스란히 말하니, 다들 성매매는 “근절”돼야한다고 “주장”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네트워크 활동가님들도 성매매는 근절돼야한다는 분명한 입장으로 일한다. 마치 합법화와 금지주의 입장만 팽팽하게 긴장감을 돋우는 것처럼 보이는 판에 그나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막달레나의 집> 연구활동가들은 성매매를 합법화/근절이라는 정책의 차원에서 논하기보다는 성판매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성매매를 논했다. 성판매 여성들이 말하는 인권이란 무엇인가, 거기에서 출발해야한다는 문제제기는 좀 더 현장성을 어떤 당위와 이념이 아닌, 여성들의 경험(입장)에서 봐야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2000년과 2002년도에 성판매여성들의 비인간적 실태가 드러난 군산화재사건은 전국을 들썩였고, 2003년도에 기지촌 여성들의 반인권적 실태가 미국 팍스방송을 타면서 세계적으로 한국이 인신매매, 반인권국가로 겨냥됐다. 그러고 나서 2004년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됐다. 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싸고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입장들이 불거져 나왔다. 성판매여성들의 노조인 민성노련이 결성돼서 출범했고, 성판매여성을 성노동자로 호명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성명서를 냈다. 그동안 성매매근절을 주장했던 여성주의자들을 비판하는 연구자도 등장했다. 성매매근절운동을 한 여성주의자들은 서구여성주의자들이 식민지 여성들을 타자화하듯이 성판매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판매여성과 여성주의자들이 마치 대립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언론방송을 통해 연출되면서 성매매특별법은 애물단지가 됐고, 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도’ 외면하는 자기 이념으로 뭉친 꼴페미 취급을 받았다.

성매매 이슈는 여전히 문제적이다. 한 사회의 여러 모순(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이 다 복합적으로 얽힌 현장이므로 한 가닥의 이야기로만 풀 수 없는 이슈이다. 그리고 노동으로만, 혹은 폭력이나 범죄행위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성매매는 폭력적 성격이 다분히 있다. 성매매근절운동가들이 제시해왔듯이, 많은 성판매 여성들은 좁은 선택지에서 착취와 폭력을 당하며 비인간적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을 매개로한 폭력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성매매는 이를 에워싼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에서 이윤이 창출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 때 성매매 거래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4.1%로서 농림어업의 것과 맞먹을 정도라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특히 감정과 성적 서비스의 상품화가 확장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성매매는 그 노동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전통적 노동의 개념에서 볼 때, 성매매는 전형적인 노동형태가 아니므로, 노동의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성을 자극한다. 뭣보다 인간의 몸 자체가 상품화된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강하기에 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논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거부 반응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캐슬린 베리가 말하듯이 성매매를 폭력으로만 규정하여 설명할 수만은 없다. 그 현장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고, 관계성이 있다.

성매매가 여러 성격이 얽힌 복합적인 현장이라면, 그 설명 또한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성매매는 폭력적이면서도 성적이며, 또 노동이다. 그런데 성매매에 관해 우리가 좀 더 섬세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뭣보다 섹슈얼리티에 묻어있는 도덕성을, 성에 관한 신화를 벗겨내는 일이 필요하다. 섹슈얼리티는 이미 규범적이다. 도덕적인 성과 부도덕한 성, 좋은 성과 나쁜 성으로 구획돼있다. 이 틀에서 보면, 성매매는 윤리적으로 나쁜 성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 틀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선행된 잣대로 판단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었다. “성매매가 없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군대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그동안 살면서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을 받는 듯, 다소 당황해하는 학생들 중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성매매는 인간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없어진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시공간적으로 초월한 본능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성매매 역시 이를 에워싼 권력관계를 해체하면서 다양한 성적 욕망을 상상해보는 일은 의미 있다. 말하자면, 돈으로 거래되는 욕망이 아닌, 규범적으로 구획된 경계를 넘어서 다양한 관계 안에서 욕망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것 말이다. 성매매도 권력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른바 성적 본능이라는 것도 그 권력관계 안에서 발휘한다. 누군가 통제하고픈 욕망은 함께 간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를 만드는 그 권력을 들여다보는 것이 우선적이다.

또 하나 짚을 점은 성판매여성을 성노동자로 호명한다고 해서 성매매를 합법화하는데 한 표를 던진다든가 성매매의 지속성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하고도 환원적인 이러한 논리 전개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주의자들은 성매매를 노동의 문제로 내놓고 공개적으로 더 깊은 논의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여성주의자들의 논의를 왜곡되게 전유하거나 ‘합법이냐 금지냐’ 하는 이원화된 틀로 그 논의를 환원하는 사람들에게 먹잇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이 어떤 이슈를 규제한다고 해서 그 이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이, 법은 최소한의 조치이다. 성매매를 법이나 제도의 차원에서 정의하는 일과 다르게, 우리의 성적 욕망과 권력에 관하여 많은 수다를 떨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의 이야기가 레드마리아에서부터 꽤 많이 간 듯한 느낌이다. 털털하면서 수다스러운 경순 감독님의 영화 영상 못지않은 발제이야기를 젠더포럼에서 들으면서 레드마리아를 감상하려 한다. 그 때 좀 더 섬세한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며. 자신의 배꼽(경험, 이야기)을 좀은 수줍게 또는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보여준,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와 나눈 레드마리아 여성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레드마리아, 멋지다!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3. 8. 28. 14:14

< 이화리더십개발원 젠더포럼 토론문 ➀ > 2013. 8. 27.

내가 본 영화, “레드마리아”

조중헌(한양대학교 사회학 박사)

며칠 전 다큐멘터리 <레드 마리아>를 보고 토론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여성들의 노동과 몸을 가로지르는 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다 아우를 만큼 깜냥이 되지 못해 걱정에 걱정을 하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이야기만 해보기로 맘먹었습니다.

성매매 혹은 성노동에 초점을 맞추어달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레드 마리아>라는 제목이 여성을 창녀(레드)와 성녀(마리아)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가 반영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여성들을 이렇게 양분하여 그들을 주체가 아닌 타자, 통제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가부장제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이론가들은 이러한 면모를 ‘양가적 성차별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페미니스트나 미혼모 같은 비전통적 특성일 갖는 여성들에 대한 처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전통적 역할을 유지하는 여성에 대한 보상을 주고 칭찬함으로써 기존의 남성중심의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섹슈얼리티는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은 결혼을 한 남편과 - ‘좋은 여자’가 될 자격이 있는 - 아내 사이의 성밖에는 없죠. 법적으로 인정받은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이 공식적 성 관계는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남성들에게 유곽과 첩이라는 제도가 있었듯이 현대의 남성들 뒤엔 성매매라는 비공식적 성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 성매매에 대한 사회의 기준은 다분히 이중적이라, 남성이 아닌 여성, 또한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업소는 사회적으로 거의 용납되지 않습니다. 간통을 한 자에 대한 태도 역시 그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이러한 사회의 이중성 앞에서 '신성한 가정'이라는 모토는 얼마나 초라한가요. 남성중심적 유교와 기독교 등을 배경으로 하는 보수주의 진영이 줄창 주장하는 '성적 타락의 방지'라는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남성만의 비공식적 성 체계를 인정하는 가부장적 가족구조의 유지'와 같은 표현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근대화와 개인주의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인간의 성은 생식이 아닌 쾌락과 관계의 맥락 속에 놓여지고 있지만, 아직 '정조 관념의 죽음'과 '성해방'의 선언문 옆에는 "데리고 놀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를 구별 짓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이른바 도덕적으로 ‘흠’ 있는 여성이거나 성관계가 ‘문란’하거나 서비스업 혹은 성매매업에 종사하는 경우 아직도 고소의 동기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받고 강간에 관한 피해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는 것이 21세기 오늘의 현실입니다.

<레드 마리아>는 지독한 편견을 가진 남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 것이 목적인 영화는 아니었기에, 성판매여성에 대한 이 사회의 고정관념은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살짝 드러납니다. 바로 ‘리타’의 목소리인데, 1944년 일본군으로부터 집단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그는 “어린 것들이 몸을 막 굴린다는 것도 큰 문제야. (…) 우리 때는 처녀가 얼마나 순결했는데 (…) 아무리 돈이 궁해도 네 몸을 파는 것에 대해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아무데나 몸 대주면서 당당하게 돈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니? 권리를 찾으려면 자신한테 먼저 당당할 수 있게 자신을 지켜야 돼”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리타가 다시 “우리 때 사상은 당연히 여자의 순결을 중요시 여겼고 강간이라 하더라도 그걸 지키지 못하면 창녀 취급을 받아야만 하던 때니까 (부끄러워 한 것이었다)”며 “창녀랑 비교해서 이래 저래 논쟁만 하는 건 말도 안 되지. (…) 우리는 여성의 권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야 그걸 밝힐 용기가 생겼고 (…) 더 이상 부끄럽지 않고 용감해진 것”이라고 여성의 권리와 용기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의 그러한 발언은 "창녀들조차 자신들도 위안부 여성들처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창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라고 권리를 주장하기도 한다"는 인터뷰어의 말에 이어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상적 페미니스트라기보다 자신의 경험과 그것의 기반인 문화의 영향을 받는 한명의 여성인 리타가 같은 여성으로서 권리와 용기를 이야기하기 위한 조건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리타와 상황은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며 연상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우 귀국 후 자신의 마을과 국가에서 ‘순결이 더럽혀진’ 여성으로 비난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전국민의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 밑에는 이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자발적으로 몸을 준 것’이 아니라 일본군으로부터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는 중요한 조건이 놓여 있습니다.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희영’은 평택 집창촌에서의 성노동자의 날 3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성노동자의 날은 이 땅의 성노동자들이 인간존엄성을 말살하는 성매매특별법에 저항해 성노동의 사회적 의미를 성인들 사이의 자율적 성거래 개념으로 규정해 우리 자신의 권리를 선언한 날"이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위안부 피해자여성에 대한 응원과 지지가 조직적 강간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자발적인 성적 실천이 비난받을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강제’가 아닌 ‘자율적’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율(혹은 자발)의 의미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한 것 역시 현실입니다. 성매매는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전부가 아닌)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성판매 여성들은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적 접근은 억압 받는 이들이 동의와 공모 혹은 협조를 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지배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레드 마리아>에서 필리핀의 어떤 성판매 여성도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성실한 직장을 찾기에는 너무 게을러서 우리가 술집에서 일한다고 말하지만, 애들을 키우려면 그것을 관둘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입장들의 충돌 속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울려 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주변부의 존재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나 의사를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기보다 주류사회에 의해서 말해지고 규정되어지는 위치에 놓여 왔습니다.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권리 (희영)”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성매매 구조가 가진 억압성을 규탄하는’ 목소리들이 ‘당사자’라는 단수 명사 안에 완벽하게 합쳐지길 은근히 바라는 나의 속마음은 그 ‘당사자’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체성들을 인정하지 않는 태평한 제 3자의 기만적 태도가 아닐까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제 3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좀 거칠게 표현해서 성매매특별법의 재개정 이전에는 성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들이, 그 이후 최근에는 그에 저항하는 성노동 지지 진영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매매 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 그러한 입장을 가진 여성주의자들은 대부분은 성판매여성의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 성판매 여성들이 탈성매매 이후 직업적으로 안정적인 대안을 찾지 못하는 현실과 “나의 자발성을 무시하지 말라”는 성노동자들의 목소리 앞에서 원론적 이야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다양한 비판들 중 한 부분이겠죠). 반면 성노동자담론을 지지하는 입장은 여성을 이른바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고 성노동자들을 낙인찍는 보수주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상당수가 의도적으로 가부장제에 기반한 여성의 성적 통제, 남성중심적 성보수주의와 이중성윤리에 대한 비판의 화살을 여성주의에 겨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 중 일부는 업주와 성노동자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성구매 남성의 인권(?)을 보호하며 ‘여성계 (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를 비판하는 것을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도 됩니다.

이들은 주로 ‘자율적으로’ 성을 사고파는 것 이면의 남성지배적 젠더권력관계에 대해선 강하게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은데, 저는 ‘금지냐, 허용이냐’ 하는 성매매관련 법 적용 문제 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구매 남성들의 욕구와 이해를 읽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성판매 여성은 자신이 가진 우월한 권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원으로서 의미를 갖습니다. 남성들은 성구매 경험에서 자신의 성적 만족도가 스스로 느끼는 성적 쾌감 뿐 아니라 여성의 반응에 많이 좌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성적 ‘능력’으로 여성이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통해 타인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남자로서 정체성과 자신감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욕구가 놓여 있는 것이죠. 따라서 상대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여지는 - 노동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 상황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또한 성매매는 ‘성적인 능력’ 외에도 ‘경제적 능력’을 이용해 상대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의 장이기도 합니다.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와 여자친구에게 할 수 없는 것을 성구매를 통해 실천하고 또 자신에게 마땅히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성판매 여성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들이 돈을 주고 여자를 사는 이유는 상대의 반응에 배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듯 지금(까지)의 현실 속에서 남자들에게 성매매 관계 속의 여성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편리한 상대로만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그 여성들이 ‘창녀’의 경계를 넘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신의 가족이 누리고 있는 영역에 들어오는 것은 결코 허락되지 않습니다. 성노동이 당당하게 ‘노동’으로 자리 잡기 위한 주요조건이 성판매여성들에 대한 ‘창녀’라는 낙인을 없애고 성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면, 성매매 관계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권력에 대해 반응을 제공해주는 통제의 대상이자 상품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여성주의의 성찰이 외면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글의 서두에 <레드 마리아>라는 제목이 여성을 양분하는 가부장제의 이중 잣대를 반영하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구도 속에서 ‘창녀’라고 멸시를 받는 ‘나쁜 여자’의 맞은편에는 아늑하고 단란한 안식처 가정을 책임지는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좋은 여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근대 사회에서 남성은 이른바 공적 영역에서의 노동을 담당하며 아내들에게 “고생은 내가 할테니 당신은 일 하지 말라”는 낭만적 대사를 읊기도 해왔지만, 그동안 그 아내들이 집에서 피아노만 친 것은 아니죠. 시장에서 인정받는 임금 노동은 가사노동을 전제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24시간 집에서 수행하는 일은 ‘신성함’으로 포장된 채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 가치가 저평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면모는 영화 속 일본 여성노동자들의 간담회 장면에서 더 이상 ‘좋은 여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살아있는 목소리들을 통해 증언되고 있습니다). 가사노동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보살핌’ 노동이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착하고 신성한 행위로 포장되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여성만의 역할로 강제되어 온 ‘타자’의 노동이었습니다. 보살핌 노동이 그토록 신성하고 착하고 좋은 것이라면, 남자들은 왜 그것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높은 시장가치가 보장될 때만 그 일을 하는 걸까요, 속물적으로. 영화 속에서, 이력서에 배우자 없이 아이가 둘 있다고 적으니 “아니 이런 시급으로 괜찮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었던 일본의 여성노동자는 “그런 곳밖에 일할 곳이 없잖아”라고 체념합니다.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라는 구획된 전통적 여성상이 현실 세계 속에서 갖는 기만을 본의 아니게 폭로하는 존재, 이들에게 최적화된 일자리는 비정규직인 듯싶습니다.

필리핀의 어느 성판매 여성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식들이다. 당신들이 우릴 창녀라고 부를 권리는 없다”고, 일본의 사토는 “파견직이든 임원이든 정규직이든 인생의 무게도 책임도 같다. 여러분의 인생과 일자리를 잃은 파견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생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는 인간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서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느껴집니다.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8. 27. 13:51

어제 저녁부터 내내 도쿄와 오사카에서 만날 사람들을 섭외하고 있다.

도쿄에 사는 히로유키가 이번 일을 중간에서 번역을 도와주어

쉽게 메일을 보내고 있다.

내가 그에게 한글로 보내면 그가 바로 번역을 해서 전달해 준다.

처음에는 구글 번역기로 보냈으나 받는 분들이 헷갈려해서

지금은 이 방식으로 하고 있다.


만나는 분들을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고 

이메일 주소를 알게되면 연락을 드리고는 하는데

어제 오늘은 오고가는 메일양이 꽤 많았다.

여러사람을 짧은 시간에 만나려하니 그만큼 공도 필요한거 같다.

그런덕에 다행히 만날 사람들을 확정했고

시간도 정확히 잡았다.


비용을 아끼자고 레드마리아 개봉 인터뷰 일정과 맞추었는데

그래도 일정이 늘어나고 사람수가 늘어나니 역시 비용을 줄이는건 힘들거 같다.

적은 비용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는 일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

숙소도 신칸센도 식비도 일단 해외에서 찍는 일은 모두가 비싼 비용을 치뤄야 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촬영방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투자가 아닌가.

그리고 꼭 뵙고 싶은 분들을 만나는 것이니 그것이면 됐다.


어제밤부터 지금가지 내내 메일을 보내고 일정 체크하느라

아직 밥도 못먹고 씻지도 못했다.

이제 슬슬 오늘 할일을 준비하자.

저녁에는 이대여성개발원에서 있는 젠더포럼에서 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레드마리아 영화중에서 성노동자와 관련한 이야기로 발제를 해달라고 했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도 좀 해보고...

모두들 진지하게 준비하는 거 같아 나름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이날의 토론 이야기도 일단 촬영을 할생각.

레드마리아2를 향한 이야기들을 쭉 담아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꼭 로드무비같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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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