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1.21 레드마리아 24 - 최종본을 뽑고
  2. 2011.06.01 레드마리아 23 - 성의있게 산다는 거
제작일기2012. 1. 21. 17:01

잼다큐 강정을 만든다고 한여름을 보내고 다시 배급을 하면서 겨울이 됐다.그리고 벌써 새해도 중순이다. 여름에 멈춰진 편집본을 사이사이 손보면서 작년 9월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106분짜리 편집본을 선 보인후 다시 최종편집을 하여 12월 서독제에서 98분짜리 완성본으로 상영을 할 수 있었다. 2007년 일년을 필리핀에서 보내며 기획하고 2008년부터 촬영을 시작한 이래 5년만의 결실이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쉽게 한줄로 거론하기 쉽지 않을만큼 다사다난했다. 그 다사다난함은 고스란히 제작비의 압박이 됐고 레드마리아는 독립영화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됐다. 하지만 그뿐이다. 작업이 길어졌던 그 수많은 일들은 쏙 빠지고 영화만 귀찮은 늦둥이가 되어버린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작년은 좀 힘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안그런 영화가 어딨겠나. 이 척박한 독립영화의 거친 토양을 자양분 삼아 영화를 만든다는 모든 사람들의 비슷한 과정일 뿐. 그래도 다행인건 이들에겐 오기와 투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이 살아있다는 것이 다시 그길로 또 걸어가게 하는 힘인 것을. 나도 그렇게 아직 심장이 식지 않고 있기에 이렇게 최종본을 끝낼 수 있었겠지. 그래서 흐믓하다. 2년전 여성영화제를 앞두고 수술을 받을때는 소원이 그래서 레드마리아를 완성하는거였는데 막상 완성을 하고보니 10편은 더 만들어야 덜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하하하

우자지간 그 끝을 잔소리 한마디 없이 기다려준 영재와 지금은 다들 곁에 없지만 함께 해준 스텝 경은,아람,영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늘 힘들때마다 이들이 있어 한 산 한 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며 사운드며 색보정이며 몇 번의 수정을 마다않고 작업해준 지은이,용수,재원에게도 너무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친구는 애니메이션을 해준 성애다. 물론 편집이 길어지는데 공을 세운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기다린만큼의 보람이 있어 아주 흐믓했다. 이렇게 작업을 같이 하고 진행을 하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작비. 일본 촬영을 고민하다 꾸리게 된 제작위원회의 후원은 새롭게 시도해본 소중한 경험이었다.

보통 후원금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크게 부탁을 하고 받았기 때문이다. 50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기꺼이 내주신 제작위원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담스럽다면서도 직접 제작위원장을 맡아 여기저기 이름을 팔아주신 김은실선생님, 친구라는 죄로 월급쟁이 친구들이 100만원 200만원 투척해준 감동의 순간, 제작위원으로 친구로 수술 후에는 죽까지 끓여서 매달 화학치료가 끝날때마다 먹을것을 챙겨준 박혜경선생님, 그리고 병원갈때마다 덜덜거리는 프라이드를 씽씽몰며 나를 데리고 다녔던 미례, 집이 없어 미례집에서 신세질때 고모가 살던 방을 저렴하게 소개해준 세영이, 그리고 워낭소리의 덕을 왕창 은혜입게 해준 영재의 특별한 지워금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은혜를 입었다.

그래서 사실 레드마리아 제작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어떻게 그 기간 가장 힘든일과 가장 행복한 일들이 완벽하게 겹칠 수 있었는지. 그 행운이 함께 했기에 필리핀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리고 한국을 다시 촬영하면서 레드마리아라는 영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거 같다. 만일 예전처럼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해야 했다면 아마 지금도 영화는 완성되기 힘들었을것이다. 그 많은 번역을 거쳐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으며 그 많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나. 족히 수백명의 사람들을 거치며 이렇게 레드마리아가 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긴 길을 관통했구나 싶다.

아마 예전 같으면 제작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작업으로 올인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게 된다. 그렇게 일년쉬자고 작정했지만 그 심심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거 같아 안해보던 일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배급이라도 재밌게 해보자고 맘먹고 있다. 사실 지난달만해도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몇 개의 영화거리를 내지를뻔 했는데 번번히 다음날 일어날때쯤 체력이 딸리는걸 확인하고는 단칼에 단념했다. 그리고 돈을 모아 여름쯤에 프랑스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알프스를 등반해보는게 작다면 작은 꿈인데 부디 실현이 되기를. 그곳에 가면 친구가 50에 진입한 기념파티를 해준다고해서 정말 땡빚을 내서라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올해는 연애운도 있단다. 아싸...^^ 혹시 프랑스에서 붕쥬르 하면서 부딪힐 어떤 놈 혹은 년? ㅎㅎ 우자지간 신나게 일년을 또 살아보지 뭐.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1. 6. 1. 16:59

마음에 내내 걸렸던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봐야 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절감하며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오갔다.
결국 오는길에 강정마을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김포에 도착할 때 쯤 내가 총대를 멜테니 니가 총연출을 맡고
옴니버스로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동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말하기전에 녀석도 나만큼 머리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으리라.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참여할 감독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대충 머리속에 있는 감독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그날 저녁에 우연히 영상자료원에서 만난 조영각에도 이야기를 했다.
불과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 소문이 났는지 많은 친구들이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나서 주니 갑자기 일이 급진전이다.
그렇게 일을 벌여 놨는데 머리한쪽에서는 계속 레드마리아를
한번 더 고칠 구상이 막 돌아가기 시작한다.

한번만 더 해보자고 한게 벌써 세번은 뒤집었는데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영재에게 가편본을 넘겼는데
가슴에 뭔가 언친듯 찝찝한게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를 내리 잔후 사무실에 나와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림을 다 붙이고 나니 결국 쓸 그림들은 쓰게 되는구나 싶다.
구성을 바꿀 때마다 좋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다른 구성으로 넘어가면서 버려지고는 했는데 이제사 비로서
버려졌던 것들이 다 자기자리를 찾아 모인 형국이 됐다.
물론 내보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수정된 편집본에 따라 추가되는 이야기를 다시 번역을 맡겨야 하는데
응주에게 미안해서 죽을 지경이지만 결국 바쁘다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미리미리 말해주면 좋을 것을...'
'감독이란게 다 죽일것들이야 미안해..근데 부탁해 응주야.'
혼자서 바둥거리며 하자니 최근에 내가 괴롭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거 같다.
시도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번역이며 모니터며 심지어 한글감수까지
게다가 이번에는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일본어 감수까지 부탁을 하고
또 수정본을 다시한번 봐달라는 부탁도 했다.

부탁을 하는 일이라는게 늘 성의있는 태도를 요하지만 지눈에 불이 나면
성의 있게 부탁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성의 있으려면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연락을 안하는게 맞으니까.
사실 그래서 두달전 강정마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던
양윤모선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나 바쁘고 그렇게 거기까지 신경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년이 넘게 성의를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힘껏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싸우지만
우리는 아니 나는 그렇게 성의있게 참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사회에서 성의있게 산다는게 무엇일까.
과연 가능은 한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 강정마을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마음먹은건 성의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성의있게 살기 힘든 사회에 사는 마당에
그저 성의없이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즐거운 일을 나름'성의있게' 벌일 수 있는지를 한번 시도해 보자는 출발이다.
레드마리아도 역시 성의없는 사회에 던지는 작은 외침일 뿐이고.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