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8.26 커피와 소주
  2. 2013.04.03 <KMDB 다큐초이스> 레드마리아 / 남다은
  3. 2013.03.28 10일간의 질주
빨간경순의 노트2013. 8. 26. 13:11

커피와 소주는 빈속에 먹어야 맛있다.

그래서 커피는 일어나자 마시는 첫잔이

소주는 배가 좀 고플때 한잔을 들이키는 첫잔이 맛있다.

그런게 머리속에 주입되면 버릇이 되고 일상을 지배한다.

아침이 되면 눈을 비비면서 자연스럽게 내손은 커피를 갈게되고

촬영이 끝난후 혹은 친구들과 만나 식당에 들어가면 일단 소주를 시켜

한잔씩 들이키고 고추장에 오이를 찍어먹는 그 순간이 젤로 좋은 것이다.

물론 요즘은 하두 더워 그 자리를 맥주가 대신하긴 한다.


그런식으로 습관이 된 문화가 참 많다.

옳거나 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익숙해진 습관들.

그래서 익숙해진 것이 때로는 맞는 것이 되고 

익숙해진 것이 진실처럼 되버리는 것들.

여성 혹은 성소수자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둘러보면

그런 익숙한 것들이 진실처럼 되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가끔 그런것들이 일상에 얼마나 많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지를 느끼면

힘이 쫙 빠진다.

아니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무섭다.


내가 알고 있는것들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고 하는 것들이

내게 익숙하게 눈물과 감성을 흔들어 놓았던 모든 것들이 위증임을 느낄때.

그런것을 염두에 두고 생긴 버릇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서 떼로 무엇인가를 정의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습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개인을 보는 것이고

개인이 다 다르다는 것이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개인과 집단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


때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진보나 보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국가,민족,여성 등등의 이름으로 프레임화 되면

집단이 내포하는 혹은 보이고 싶어하는 이미지만 그들을 대변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순간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어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공포영화가 있을까.

마치 한편의 SF를 보는 것 같은 아찔함.


커피를 마시면서 참 좋다고 느끼는 시간인데

결국 글이 이렇게 정리된다.

빈속에 마시는 오늘의 첫 커피가 나에게 주는 상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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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3. 4. 3. 10:25

레드마리아 (경순, 2011)[2012.08.14]

레드마리아 (경순, 2011)

동시대를 사는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하나의 범주 안에서 기록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다만 가장 구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내려가서, 이 여성들이 공유하는 어떤 지점들, 즉,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사는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 그리고 그 노동과 분리될 수 없는 몸에 대해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몸의 상처, 고통, 활동, 그러니까 그 몸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아마도 그간 남성들의 시선, 언어에서 누락된 아시아 여성들 각각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완결적이지 않고 통합적이지 않으며 파편적이고 희미하지만, 오직 정서적이고 경험적인 연대로 가지를 뻗어가는 아시아 여성들의 지도. 아마도 경순 감독의 <레드마리아>는 그 지도의 첫 장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오가며 감독은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일상과 그 일상을 꾸려가기 위한 그들의 노동과 그 일상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시작한 그들의 저항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엄마이기도 하고, 성노동자이기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하고, 위안부 여성이기도 하고, 이주민 여성이기도 한 이들의 삶을 교차시키며 공통된 지점들로 엮어내면서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들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이들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한국과 일본의 파견 노동자들이 기업들의 해고에 맞서 어떤 투쟁을 하고 있는지, 한국과 필리핀의 성노동자들이 사회의 편견에 맞서 어떤 식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생존을 꾸려 가는지 이어서 보여주는 식이다. 여기에 영화는 특별한 설명을 덧붙여 각 국가의 여성들이 당면한 현실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대신, 그저 그들의 세계 각각을 오갈 뿐인데, 그 과정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쟁점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오래 전 일본 군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강간을 당했던, 지금은 노인이 된 필리핀 여성들 중 한 명이 현실의 성노동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그들을 ‘여성의 권리’ 안에서 망설임 없이 받아들일 때, 두 집단은 시스템의 폭력 안에서 자신들의 몸-경험, 혹은 몸-역사로 교집합을 발견하고 끌어안는 법을 터득한다. 그것은 그 어떤 지식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보다 급진적이다. 혹은 영화가 유사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오갈 때, 우리는 그 유사한 상황 속에서도 계급, 섹슈얼리티, 민족 등의 차이가 빚어내는 다른 삶의 조건들을 보게 되고, 단순히 여성이라는 범주로 포괄할 수 없는, 그 안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착취와 피착취의 무수한 권력관계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와 끝에서 감독은 자신이 만난 수많은 여성들의 배를 얼굴 없이 찍었다. 늘어지고, 터지고, 불룩한, 각양각색의 형상을 한 신체의 기관, 아니, 여성의 개별 과거를 고스란히 담은 흔적이자, 지금도 살아 숨쉬는 활동으로서 어쩌면 가장 숭고하고 가장 추한, 그리하여 어쩌면 가장 논쟁적인 여성 몸의 일부, 아니 전체. 거기, 얼굴이 잘린 이 배들은 이상하게도 대상으로서의 신체 일부가 아닌, 그 자체로 충만한 세계로 느껴진다. <레드마리아>는 무언가 메시지를 역설하거나 어떤 답의 뿌리를 찾기 위해 각국의 여성들의 삶을 모아 깊게 들어가는 대신, 서로를 서로의 질문으로 만들어 즐겁게 펼쳐가며 스스로 네트워크가 되려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 여성들이 붙잡은 삶의 의지를 기꺼이 끌어안고, 그들의 친구로서,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그 삶들이 마주한 세계들을 바라보려는 영화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직, 시작이다.

/ 글: 남다은(영화평론가)

원문출처 http://www.kmdb.or.kr/docu/board/choice_list.asp?seq=1133&GotoPage=1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3. 3. 28. 18:31

머리속에만 빙글빙글 있던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니 남은건 책밖에 없네.

10일간 20여권의 책을 사서 공부를 한거 같다.

어떤책은 사고보니 이미 가지고 있는 책도 있었고

어떤책은 한페이지를 위해서 보기도 했고

어떤책은 서문만 읽은 것도 있다.

그래도 기획안을 써내려가는데 충분히 근거가 되준 책들이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치 영화 한편을 벌써 다 만든것처럼 진이 빠지고 조금 허탈하다.

결국은 제작비를 위해 써내려간 이야기고

그 이야기들은 본격적인 촬영을 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로

변신을 하겠지만 일단은 마음이 다르다.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그 출발점에 서있는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

이제부터 좀 더 차분하게 다시 사다놓은 책들을 들여다 봐야겠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