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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0 레드마리아 22 - 한번만 더
제작일기2011. 4. 20. 16:56

3차 가편을 끝내고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슬슬 몸도 피곤하고 모니터 내용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이정도면 하고싶은 이야기를 대충 알맞게 쏟아냈다 싶었다. 몇군데 거친부분을 다듬고 애니메이션이 완성되면 후반부의 시간과 리듬 조절만 해야지 했었다. 근데 끈적끈적하게 원인도 알 수 없게 그저 뭉실뭉실 끝나지 않은 느낌이 드는건 뭔지. 그렇게 한달을 대충 몸을 추스르며 시간을 보내다 문득 머리에 그분이 오신 필을 받고 화면을 다시 대면하기 시작했는데 머리가 아득해진다.

그분이 오긴 왔는데 문제는 다 뒤집으라는 계시인 것이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닌것이다. 큼직하게 몇구다리로 화면을 이리저리 옮겨보자니 공사도 보통 공사가 아니게 생겼다. 3월말에 끝내겠다고 큰소리 쳤는데 이미 4월 중순이 넘어서 다시 한번 편집을 하겠다하니 영재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누나 제가 보기에는 3차가 최선이라 생각되고요 저도 완성본이 있어야 어떻게 할지 구상도 좀 하는데...어쩌구저쩌구...%^$#*&^(*!!!!??#####! 녀석의 말이 귀에 안들어온다.

이래저래 한참 힘들텐데 내 모냥새가 걱정됐는지 진행비로 쓰라고 카드까지 건네준 녀석을 생각하면 좀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늦어진거 한번만 더 시간을 주렴...하는 마음으로 편집기를 노려보고 있다.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붙어보자. 근데 초반부터 널려있는 클립들과 프리뷰를 보는 순간 기가 눌린다. 이런...워쩐디야. 그래 주인공도 많고 사건도 많긴 많구나. 하나를 손댈때마다 덩달아 달라지는 다음씬에 머리를 잡아뜯던 시간들이 새삼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제 정말 막판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지쳐갈 때쯤 다들 이제는 손을 놓고 싶어지는 그때처럼. 어쩌면 지금 나는 그 고비의 순간을 지치지 않고 잘 넘기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시작도 하기전에 미리 없었던 시간으로 조용히 손을 놓고 싶어 질까봐. 그래서 그러지말고 한번 더 그림과 신나게 놀아보라고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설사 그렇게 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라도 이 순간을 놓치면 더 많은 아쉬움으로 가슴을 후려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때는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힘들다. 하긴 한달전 제주도에서 올라온 양윤모선배를 만나 어리광이나 한번 부려볼까 했다가 더 큰 보따리를 내미는 선배에게 어리광은 고사하고 강정마을 소식만 부지기로 머릿속에 쳐넣게 됐었다. 뭐야 나두 힘들거든. 근데 웬일이니.이제는 해군기지반대싸움으로 구속되어 단식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듣고 보니 이렇게 편집기를 붙들고 있는 마음이 더 무겁기만 하다. 다들 그렇게 살고있구나. 누구는 그렇게 자신을 던져 해군기지 반대싸움을 하고 누구는 영진위에 맞서 대책을 고심하고 누구는 오늘도 가족문제로 골머리를 썪이며 두통을 앓아가며 하루가 무사히 지나기를 바라고 누구는 다가올 피칭을 준비하며 자신의 새영화를 시작하기 위해 또 밤을 새며 골머리를 싸메고 있는...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편집기를 덮어야 할거 같다. 일단 내일 산에가서 맑은 공기 한번 마셔주고 머릿속에 차있는 잡다한 걱정들을 일단 내머리에서 접어두자. 그리고 정말 화끈하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오케이?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