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경순의 노트2017. 8. 7. 23:26

김동령 <거미의 땅> 감독

마지막까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를 촬영하던 다큐멘터리 감독 박종필을 추모하며 그의 주요 작품 5편이 유튜브에서 상영중이다. (1999),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버스를 타자!>(2002), <노들바람>(2003), <4·16프로젝트망각과 기억’-인양>(2016), <망각과 기억2: 돌아 -잠수사>(2017) 88일까지 다시보기라는 이름으로 상영된다. 박종필 감독은 외에도 <끝없는 싸움: 에바다>(1999), <에바다 싸움 6: 아래 모든 이의 평등을 위해>(2002), <장애인도 노동자다>(2005), <거리에서>(2007), <침묵을 깨고>(2008), <해피투게더는 행복의 시작이다>(2009), <시설 장애인의 역습>(2010). <장애운동 10년사-투쟁없이 쟁취없다!>(2012), <극중극>(2012), <발달장애인법 제정하라!>(2013) 같은 작품을 연출했으며, 수많은 현장에서 영상 기록을 담당했고 행사 영상을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태준식 감독의 칼럼 다른 박종필들’(한겨레 시론 81일치) 이어서 쓴다.


박종필 감독의 영화 속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의 몸짓과 소리가 등장한다. 대중 미디어와 상업영화에도 이들이 가끔 등장하지만 대부분 동정을 유발하는 애처로운 대상으로서 그려진다면, 박종필 감독의 영상에는 이들이 투쟁하는 이미지, 권력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소리로 등장한다. 이들이 일으키는 소음과 합의되지 않은 어두운 이미지들은 민중의 자기 고통의 표현이라는 존엄성으로 승화된다. 박종필 감독의 엄격하고 뛰어난 촬영과 시적인 영상에 기록된 대상과 사건은, ‘소비 통해 포용 가능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 너머 상상할 있는 다른 사고와 풍경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는 언제나 승리한 자들의 기억으로 구성되거나, 승리에 동원된 사람들의 매스게임과 같은 풍경으로 만들어졌다. 가끔 밑바닥 민중들의 삶이 노출되지만 대중과 합의 가능한 안전한 선에서 허용될 , 이름 없는 자들의 기억은 공식기억에서 배제된비주류 기록물 한정되었다. ‘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대중의 관심사에서 소외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존재해온 것이다. 그렇게 역사의 기억은 망각을 통해 합의된다.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가 누군지 모른 살아온 것이 지금껏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온 세계였다. 만약 앞으로도 승자의 기억만이 주류 미디어를 통해 삶의 진실로 재현된다면, 그것이 국가의 공식 기록이 된다면, 앞으로 다가올 세계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종필 감독을 포함해 많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은 1980년대 이후 다양한 현장 속에서 민중의 미시사를 기록하고 새로운 영화를 생산해 왔다. 그런데 그들은 모래알같이 흩어져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는가? 이들의 작품은 그토록 찾아보기 어렵고, 거리에서,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고군분투하는 감독들은 극도의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살을 깎아먹으며 활동하고 있는가? 독립다큐멘터리를 하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은퇴 없이 평생 꾸준히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박종필 감독을 고작 49살의 나이에 떠나보내게 되었는가?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거치고 풀뿌리 민주주의에서 태동한 독립영화 공동체는 한국 사회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그동안 영상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와 시민방송 <아르티브이>(RTV) 같은 형태로 자생적인 제작·배급·교육기관을 만들어왔으나, 반민주적 정권은 이를 처참히 무너뜨리고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외에도 독립영화전용관이나 독립영화제도 탄압 속에서 기적처럼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의 힘으로 간신히 유지되었다. 지원이 끊긴 영화제가 미련없이 사라졌던 것에 비해 인디다큐페스티벌과 인디포럼 같은 독립영화제의 생존은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성을 반증하는 현장이다.


하지만 엄혹한 정치적 검열 속에서 독립다큐들은시장에서 살아남기를 강요받아왔다. 자신이 촬영한 대상에 대한 존엄성과 촬영윤리를 고민하는 대신 멋들어진 트레일러를 만들어 상품으로서 팔기를 강요받아왔다. 독립영화는 사실 시장과 거리가 예술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맞춰 독립다큐 감독들마저 시장에서 생존이 목적이 되어왔다. 거대 방송사의 갑질과 횡포에 맞서는 독립외주제작 피디(PD)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방송사의 저작권 갑질 속에서 하청 노동자로 생존해 왔다. 다큐멘터리의 시장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창작자들이 아닌 방송사들이 좋은 작품을 사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공정한 시장의 전제는 경쟁의 주체가 달라져야 하는 있다. 이렇게 독립영화는 구조적인 문제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생존 문제로 한정한다면,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분투는 개인적인 비극으로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묻고 싶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기록이란 무엇인가. 어떤 기억을 만들어 가야 할까? 이곳에서 영화는 무슨 역할을 있을 것인가? 질문에 대한 응답은 부지런히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래의 작품들과 담론들은 고사당할 위기이다.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감독과 영상 활동가를 문화예술인으로서, 미시적인 기억을 만드는 사회적 노동자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계에도 유례를 찾아볼 없는 독립영화라는 독특한 전통, 귀중한 문화유산을 영영 잃어버리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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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805869.html#csidx4c20fe6de3c994e92d77767f20e3b5a 


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7. 8. 7. 23:21

태준식

공공운수노조 교육센터 교육국장, 다큐멘터리 감독

세상에 당연한 죽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 너무나도 황망한 죽음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20 넘게 활동해온 영상활동가 박종필 감독의 죽음이었습니다. 모두가 슬퍼하고 고인의 뜻을 기렸습니다. 특히나 고인과 같은 일을 해왔던 영상활동가들은 소리 죽여 깊게 슬퍼했습니다. 아니, 슬퍼할 틈도 없이 고인이 해왔듯 그이의 생전 모습을 모으고 편집하며 슬퍼하는 이들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편집 모니터 속에 나타난 고인의 모습과 말들을 들으며 빈소 귀퉁이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다른 박종필들영상활동가들이 지금 많이 아픕니다.


많이 참담한 연분홍치마김일란 활동가의 투병 소식이 전해진 이유도 있습니다. 김일란과 박종필은 영상활동가들에게는 하나의 나침반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방향이었습니다. 나침반이 흔들리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활동가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위원장 역할을 담당했었고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을 기록하는 퇴진행동본부 미디어팀에서 활동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해 바로 얼마 전까지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잔인하게도 활동가는 같은 시기 암을 얻었고 그중 명의 소중한 동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혹한 일들이 벌어진 걸까요. 외로움과 상실감에 몸서리치는 이들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친구가 되었던 영상활동가들.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실어 날랐고 종국에는 그들에게 싸울 있는 무기를 쥐여 주기 위해 헌신해왔던 영상활동가들. 무엇 때문에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것일까요?


정작 영상활동가들은 자신이 외롭고 힘든 존재임을 몰랐습니다. 몸은 거리에 있었으며 마음은 전이된 민중들의 고통 때문에 언제나 아팠습니다. 그것을 숙명으로 알았습니다. 사회의 선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던 자신의 노동이 소중한 사회적 노동임을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역할은 말해 할까요. 문화산업의 종사자로 창작자들을 대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사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나마 가늘게 있던 공적 지원을 끊어 생존의 위협을 가했던 국가의 폭력이었습니다. 영상활동가들의 친구들은 어떠했을까요? 항상 따라다니는 그림자로 영상활동가를 대할 , 헌신적인 활동가임을 인정할 , 처지를 공식화하고 제도화하는 노력에 관심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없습니다. 영상활동가들 마음속에 있는 순수한 뜻과 열정을 모른 사용 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노동활동으로 치켜세우며 우리들은 너무나도 시간을 잃어왔습니다. 속으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걱정은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박종필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가들과 박종필 감독의다큐인후배들. 그리고 독립다큐 창작자들은 다시 거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날 것입니다. 슬픔을 가슴에 묻고 박종필 감독의 말처럼우리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녹화 버튼을 매만지고 있을 겁니다. 영상활동가들의 친구들께 부탁드립니다. 잠시나마 그들에게 쉬어갈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연대해 주십시오. 국가가 역할을 있게 힘을 모아주세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은 이런 독립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사회적 노동으로 대우받기 위해 노력해 주십시오. 나라의 소중한 문화자산이자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다큐 창작자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십시오. ‘ 다른 박종필들이 고인의 뜻을 부침없이 이어갈 있도록 해주십시오. 서늘한 여름. 소중한 동지들을 이상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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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4995.html#csidxa620326c938af9db608e51ea47048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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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경순의 노트2017. 7. 29.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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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리뷰2016. 11. 1. 12:47

[한국독립영화협회 뉴스레터 vol.4 : 1601031]



[TALK] 

우리의 어지러운 근심과 진심 

‘피칭제도’를 통해 바라본 지금의 독립다큐멘터리 환경



일시┃2016년 9월 9일 금요일 저녁 6시

장소┃한국독립영화협회 

기획┃김청승(한독협 단체회원 서울영상집단), 이진우(한독협 다큐분과 운영위원), 이지연(한독협 사무국장), 차한비(한독협 사무국)

대담 참여자┃경순, 김경만, 김청승, 박경태

사회 및 정리┃이지연

녹취 및 사진┃이진우, 차한비



이번 대담은 지난 5월, 서울영상집단 김청승감독이 한독협 회원내부 SNS에 올린 “No Competition! No Capitalism!! Boycott the pitching!!! 보이콧에 뜻 모아주실 분들은 아래 메일로 이름과 연락처 남겨주세요.”라는 게시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한독협 뉴스레터를 재개한 사무국은 서울영상집단 회원탐방 기사를 통해 김청승감독의 문제의식을 나누고자 기획했다. 

관련하여 김청승감독, 이진우감독과의 기획회의를 통해 

‘피칭제도는 한독협이 찬반을 나누어 공식화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러함에도 비판적 의견에 대해 공론화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의 필요성, 변화된 제도와 환경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의견 공유’를 목표로 단체탐방이 아닌 ‘피칭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의 대담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야기의 출발은 ‘피칭’에서 시작되었으나 대담의 내용은 독립영화제작환경 변화 가운데 새롭게 출연한 제도를 바라보는 태도, 정부기관의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의 문제점과 독립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지향점 그리고 신진작가들을 위한 환경에 대한 고민까지, 현재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의 문제와 고민에 대한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대안을 찾기 위해 모색해야할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대화하길 제안하고 있다. 장시간 솔직하고 다양하게 나눈 그날의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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