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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리뷰2013. 11. 26. 01:25

경순 | 존재의 이유  interview / F.OUND 

2013/05/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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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rtant to Us & Those Who Need_존재의 이유 

경순

 

경순 감독의 영화들은 내가 얼마나 ‘열린 사고’를 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깨지고 아프고 반성하고 고민하고, 한 마디로 그녀에게 매번 함락되면서도 그녀의 영화를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과정이 현재의 나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작 <레드 마리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영화 <레드 마리아>에는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창녀, 이주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위안부 할머니로 불리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의 여성들이 다양한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벌고, 6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고, 부끄럽게 느껴지는 자신들의 과거를 밝히고, 부정부패한 정부를 한탄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포착해낸다. 다른 모양, 다른 언어,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그녀들의 몸은 묘하게 하나가 된다.


여성의 몸과 노동의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는 이 사회의 편견과 제도에 물음표를 날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모든 것이 여성의 ‘배’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배’로 돌아갈 때 어쩌면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이 사회가 만들어낸 물음표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고? 당연하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영화를 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겠지만, 아래의 인터뷰가 어느 정도의 궁금증을 달래 줄 수 있을 것이다.


경순 감독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그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근하고 따뜻했고 단호하고 의연했다. 거기에 유머러스하기까지 했고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갖추고 있었다. 올해로 14년째 영화를 만들고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은 뭐였냐고. 그녀가 얘기했다. “계속해서 질문이 있기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여전히 있기 때문에. 내 속이 답답하니까 뭔가를 계속 찾으면서 그 다음, 그 다음을 해왔던 거 같아요.” 누군가는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렇게 애쓴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냐고, 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세상이라는 것이 쉽게 바뀔 물건도 아니고, 또 쉽게 바뀌어버리면 그 또한 재미없는 일이니까. 그들에게 내가 한마디 해야겠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일을 그녀가 하고 있다고.

 

 

#1. ‘레드 마리아’들의 이야기


여성의 몸과 노동을 이번 영화의 화두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쌓여있었던 거 같아요. 여성의 몸에 대한 이미지들과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기존의 잣대들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이 계속 답답한 갈증처럼 남아 있었어요. 21세기 가부장 사회 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이 있어요.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것이 노동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보통 노동이라고 하면 임금노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걸 해체해서 비정규직이니, 가사노동이니 윤리적으로 얽혀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러면서 몸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제가 어릴 때부터 배에 꽂혀있었어요. 목욕탕 가면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아줌마, 언니들 배를 보는 걸 재미있어했어요. 어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봤는데, 나이가 들면서 배에 감정이 하나씩 하나씩 쓰여지더라구요. 생리도 하고, 임신도 하고, 출산도 하고, 배로 하는 일이 많아진 거 같은데, 왜 여자들은 배를 부끄러워할까. 왜 비밀스럽게 숨겨야 하고, 은밀해야 하는 걸까. 반대로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억압받고 벗어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스스로도 그 벽을 못 깬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출발을 다시 해야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 여자와 남자가 다른 건 여자는 가슴, 남자는 자지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자지와 보지인 거잖아요. 보지의 출발은 자궁이고, 그 자궁을 감싸고 있는 것이 배인 건데. 이와 비슷한 형태로 여성의 노동 역시 편견 속에서 고스란히 사회의 노동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려면 몸 얘기를 같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인물들을 한국여성으로 한정시키지 않고 일본, 필리핀으로 확장시킨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영화) <쇼킹 패밀리> 상영으로 일본에 6번 정도 다녀왔어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선입관, 경제대국이기 때문에 여성의 삶도 우리보다는 상황이 나을 거라는 막연함을 갖고 일본에 갔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아닌 거죠. 우리보다 훨씬 더 개인의 운신의 폭이 좁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적은데 해결돼야 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인 상황인 거죠. 경제가 발전했다고 해서 과연 여성의 지위도 그만큼 발전했나, 겉모양만 다를 뿐이지 그 속의 내용들은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세상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일을 한다는 건 절망적이다. 일과 노숙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노숙을 선택 하겠다”는 이치무라의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영화에는 안 썼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 이치무라의 이야기가 컬쳐 쇼크라는 얘기를 하면서 “니가 가난을 몰라서 그런다. 우리가 1970년대에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일 했는 줄 아냐. 니가 어떻게 노동을 그렇게 얘기할 수 있냐”고 하시더라구요. 이 총회가 한국으로 옮겨왔어도 상황은 비슷했을 거 같아요. 이치무라가 하는 이야기에 집중을 했던 건 내가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말 왜 노동을 하는지, 노동에 대한 본연적인 질문을 이치무라가 던져준 거잖아요. 노동을 하는 여러 여성들 사이에 노동을 하지 않는 이치무라를 집어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구요.

 

성노동자와 위안부 할머니를 같이 놓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돌 맞을 수도 있는 일이에요. 
<쇼킹 패밀리>를 만들 즈음에 외국에서 성노동자로 활동하는 친구를 소개 받았어요. 친구가 “이 친구는 성노동자야”라고 소개를 해주는데 “어머 반갑다”가 아니라 “어… 그래…” 이렇게 된 거죠. 그날 집에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니까 내 행동이 나 스스로도 당황스럽더라구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내가 성노동자에 대해 깊숙이 고민을 안 해본 거지. 그렇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편견이 생긴 이유가 뭘까. 그 끝 지점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고, 내 몸을 부끄러워한다는 건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은 거잖아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이 사회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교육을 받아요. 남자 아이가 고추를 내놓고 다니는 건 아무 말 안 하는데 여자 아이는 꼭 팬티를 입히거나 기저귀를 채우죠. 돌 사진만 해도 그래요. 남자 아이들은 고추를 내놓고 사진을 찍잖아요. 거기서부터 이미 여자와 남자가 조심해야 될 것들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이것이 한 쪽의 성노동자와 한 쪽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예민한 얘기라고 해서 덮어둘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고민으로 안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많은 여성들을 만났잖아요. 영화에 담긴 이야기는 일부분일 거 같은데 만나면서 어떤 걸 느끼셨어요? 
자라면서 보고 겪고 만났던 사람들을 일본과 필리핀에서 다시 만난 거 같았어요.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길게 꿰면 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필리핀 톤도의 그레이스가 일본의 조순자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좋았던 건 다들 너무 따뜻했다는 거예요. 마치 내 이웃, 언니, 동생, 엄마 같은 분들이셨어요. 나라와 환경은 다르지만 그걸 벗겨놓고 보면 여자들의 수다나 삶, 고민은 비슷한 거 같아요.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역사성, 거기서 나오는 습관이나 버릇만 다를 뿐인데 우리는 왜 자꾸 그것만 크게 얘기를 하고, 굉장히 다른 것처럼 바라볼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2.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감독님 영화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거 같아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하기도 하고, 충격을 주기도 하구요. 세상을 보는 감독님만의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쭉 생각해왔던 방식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 안에 고스란히 드러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예를 들면 어떤 거에 통제받지 않고 자랐던 거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고 각각 재혼을 하셨는데, 사실 그분들이 괴로웠던 삶을 빼면 저는 그게 좋았어요. 왜냐면 나한테 집중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까. 근데 남동생은 다르더라구요.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근데 저는 그걸 굉장히 자유롭게 느꼈거든요. 어릴 때 보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행동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저는 그런 스트레스를 안 받았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내가 보고 싶은 거 보고, 그래서 경험의 폭이 조금 넓었던 거 같아요. 학교 다닐 때 날라리 친구도 있고, 모범생 친구도 있었는데,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경순아 너는 친구 따라 강남을 어느 쪽으로 가는 거니?” (웃음) 그 친구들 자체가 나에게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해줬죠. 커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문화운동을 하든, 노동운동을 하든 어떤 곳에 있든지 간에 그냥 내 기질대로 살아왔던 거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반응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었어요.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풀리지 않는 고민들을 얻고, 그것들을 이미지로 만드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거죠. 어쩌면 그게 제 나름의 영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요.

 

통제가 없다는 건 본인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무언가를 취하고 버려야한다는 건데, 보통은 부모가 그 역할을 해주잖아요. 어린 아이가 혼자 알아서 취하고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그게 부모하고의 관계 속에만 내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구들이 다 내 바운더리인 거죠. 보호나 통제라는 것이 좀 더 확대됐다고 보면 될 거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할 때 부모가 얘기를 안 해줘도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듣기도 하고, 아니면 옆집 할머니가 얘기해주시기도 하고, 그분들에 의해 판단할 수 있는 눈이 생긴 거죠. 그 역할을 부모만이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건데, 저는 그들이 갖고 있는 스스로의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판단의 힘부터 시작해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그러지.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근데 학교에 있는 시간만 학생은 아니거든. 그 친구들도 인터넷 하고, TV 보고, 사람들을 만난다는 거죠. 자신들을 보는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 사고를 하는 건데 학교 중심으로 통제를 하는 방식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가족으로 봤을 때는 더 심각한 거지. 어디 가서 못된 짓 하면 엄마 욕먹는다, 그런 방식이 너무 웃긴 거죠. 그건 걔 문제지, 내가 왜 욕을 먹어.

 

근데 그건 저도 아직까지 못 벗어나는 말 중에 하나인 거 같아요.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욕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네 다닐 때 인사도 잘하고, 행동도 바르게 하려고 하거든요. 
그게 최면인 거잖아. 씨족사회에서 연대하던 방식이 몇 백 년, 몇 천 년이 흘러서도 똑같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반복된다는 게 웃긴 거죠. 제가 지금 고등학교에서 영화 관련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처음에는 고민을 안 해요. 자기가 여자라는 것,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것에 대해. 왜냐면 계속 보고 듣는 건 수능에 관련된 거고,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들을 보면서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할 시간이 없는 거죠. 근데 얘기를 하나씩 꺼내놓으니까 우리 때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엄마가 여동생 낳았을 때 할머니가 되게 실망했고, 남동생 낳으니까 너무 좋아했다.  

 

아직도 그렇단 말이에요? 
그런 집이 있다니까. 여자이기 때문에 불편한 것들을 텍스트로 작업하는 걸 했는데 내가 보여줄게요. 설날 용돈 차등 분배, 항상 왜 남자가 리드를 해야 하나, 그게 얘네들도 꼭 좋은 건 아닌 거야. 여자만 집안 살림할 때, 얘는 촬영감독을 하고 싶나 봐. 촬영은 남자들이 하는 거라고 할 때, 험한 일 못하게 할 때, 생리를 한다는 것, 고등학교 2학년 애들이 이런 얘기들을 한다는 거죠. 이런 얘기가 정말 자유롭게 오가면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건데 얘기를 못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그래서 내가 ‘웬일이니, 나랑 이 아이들이 몇 십 년 차이인데’ 그랬어요. 그게 어렸을 때부터 바뀌지 않고, 대학 들어가고 성인이 되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하니까 50대든, 40대든, 30대든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 생활이 달라졌기 때문에 우린 윗세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문화적인 코드가 다른 것뿐이에요. 그 외에는 달라진 게 없어요.

 

그 얘기 들으니까 무섭네요.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 컬쳐 쇼크 아니에요?

 

 

 

 

#3. 영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삶 

 

대학 졸업하고 노동단체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일을 하신 거예요? 
졸업을 한 건 아니고 4학년 중퇴를 하고, 시 쓴다고 깝죽대다가 문화운동을 하게 됐어요.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현장 문화운동을 하다가 지하철노조에 들어갔죠. 활동가 간사로 일을 했어요. 근데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가의 역할이 양에 안 차더라구요. 뭔가 좀 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서 이야기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로 전업하게 된 거죠.

 

얘기되지 못하는 것들을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렇죠. 대의 속에 가려 있는 얘기들. 노동운동을 한다고 해서 다 미화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노동운동 내에도 차별과 여러 문제점들이 있는 건데 그 안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뜬금없는 얘기가 되니까. 그에 대한 갈증이 컸어요. 그 얘기들을 제대로 하려면 문화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될 것 같았고, 시는 양이 안 차서 영화를 선택했던 거 같아요. 근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영화를 전공하신 것도 아니고 감독님이 영화를 시작하던 1990년대 후반의 독립영화계가 지금보다 환경이 좋았던 것도 아닌데, 영화 만들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오히려 그때는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서울인권영화제는 당국의 탄압을 받으면서 열렸고, 인디포럼은 상영장에서 쫓겨나고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상황도 벌어지고. 독립영화를 한다는 느낌이 말 그대로 독립군 같았어요. 그리고 워낙 사회 분위기 자체가 억압되는 분위기였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데가 많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토해내는 창구로서 영화를 접했다면, 영화를 접하면서 내가 토해내는 방식을 고민하고, 영화화하는 과정이 점점 재미있어졌어요. 

 

15년 정도 영화를 만들어오셨잖아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드세요? 
전혀 안 들어요. 언젠가 홍형숙 감독이 (영화) <경계도시 2>를 만들고 나서 산 중턱쯤 온 거 같은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했는데 나는 늘 영화를 만들 때마다 바닥에 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늘 신인 같은 느낌. 이런 건 있죠.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것들이 덜 당황스러워진다든지, 좀 더 요령이 생긴다든지, 근게 그걸 갖고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작품을 만들었을 때 내가 그 역할을 못하면 그 작품이 정말 별로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늘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게 창작의 매력이죠.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잘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창작 세계에선 작품으로 확인되는 거기 때문에 늘 신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긴 세월 동안 영화를 계속 할 수 있게 만든 힘은 뭐였어요? 
계속해서 질문이 있기 때문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여전히 있기 때문에. 내 속이 답답하니까 뭔가를 계속 찾으면서 그 다음, 그 다음을 해왔던 거 같아요. 정말 숨차게 헐떡헐떡 거리면서 10년이 지나갔어요. <레드 마리아>를 하면서는 좀 여유 있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몸이 안 받쳐 주는 거지. (웃음) 나한테 체력은 큰 무기고 재산이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하면서 스스로 변화된 것들이 있으세요? 
그럼요. 저는 영화 만드는 기간 동안 매번 새로운 삶을 사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성장한다고 느껴요. 영화 자체로 성장을 했다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깨지고 고민하고 느낀 것들이 진짜 나를 성장하게 해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연적으로 공부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나마 영화를 만들면서 공부를 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매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질문들과 사람들이 궁금해요.

 

 

#4. 우리가 사는 세상


수림이(경순 감독의 딸)는 올해 몇 살이에요? 
올해 드디어 스물이 됐어요. 많이 컸죠.

 

진짜 많이 컸네요. <쇼킹 패밀리>에 출연할 때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지내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갔어요. 자기가 돈 벌어서.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경제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밥 먹듯이 얘기했는데, 실제로 수림이도 그렇게 생각을 하더라구요. 필리핀에서 돌아온 날부터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서울에 있는 1년 동안 자기가 번 돈으로 나보다 더 떵떵 거리면서 살았어요. (웃음) 근데 자기도 고민이 많겠지. 얼떨결에 나 때문에 필리핀에 딸려 갔다가 혼자 있는 기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한 거 같더라구요. 내가 그걸 보면서도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을 하는 구나 그랬어요. 자기의 삶이나 자기의 몫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엄마를 믿었다가는 자기 인생이 구겨질 거라는 걸 아는 거지. (웃음) 앞으로도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해요.

 

수림이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수림이 키우면서 힘든 건 하나도 없었는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어려운 게 너무 많았지. 얘를 왜 안 가르치냐, 얘가 왜 아직도 말을 못 하냐, 얘가 왜 아직도 오줌을 싸냐. 심지어 목욕탕에 애를 데리고 가도 생판 모르는 분이 와서 막 뭐라고 하는 거야. 다 컸는데 기저귀 채운다고. 아까 얘기한 거처럼 아이가 못하면 부모가 욕을 먹는 그런 상황들과 무수히 싸우는 거죠. 그런 시선이 수림이를 불쌍한 애처럼 만드는 거에 대해서 싸웠고, 주로 내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던 거 같아요. 수림이가 나를 피곤하게 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친구는 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 말썽피우면 피우는 대로, 미우면 미운대로 그런 재미로 애 키우는 건데. (웃음)

 

왠지 수림이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거 같아요. 
다르지만, 다르게 자랐기 때문에 수림이가 느끼는 편견과 부담이 있어요. 수림이가 필리핀에서 혼자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친구 엄마가 그랬나봐. “넌 졸업하고 어느 대학 갈 거니, 순서가 어떻게 되니?” 근데 얘는 대학 갈 생각도 없는데 “어느 대학 가려구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런 얘길 왜 해?”라고 했더니 안 그러면 너무 피곤하다는 거야. 그러면 너 왜 대학을 안 가려고 하니, 그것이 네 인생에 어떤 문제가 되는지 아니, 그게 너무 피곤하다는 거죠. 그런 어려움들은 언제나 있는 거 같아요. 근데 그것 역시도 수림이가 헤쳐 나가야 할 일인 거니까. 

 

혹시 살면서 후회하신 일은 없으세요? 
어릴 때부터 후회하는 걸 되게 싫어했어요. ‘한 일은 절대 후회 안 한다’는 기조가 초등학교 때부터 성장할 때까지 계속 됐고, 영화를 만들면서도 계속 있었어요. 근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후회하는 맛도 있어야지. (웃음) 누구 약 올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느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거랑 비슷한 예로 자기가 자주 쓰는 단어가 있고, 안 쓰는 단어가 있잖아요. 저는 안 쓰는 단어 중에 자괴감이 있었던 거예요. 예전에 한 친구가 영화가 잘 안 풀려서 글을 썼는데 자괴감 어쩌고 하는 거야. 근데 나는 그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신선했던 거지. 도대체 자괴감은 어떤 감정일까,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재수 없다고. (웃음) 나는 정말 궁금했는데.

 

앞으로 후회가 되거나 자괴감이 들면 감독님을 생각해야겠어요. 후회와 자괴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하면서. (웃음) 요즘 약간의 고민이 있는데 제가 싫어했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꼰대’라고 하죠. 남 얘기 잘 안 들으려고 하고, 배배 꼬여있고.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도 느끼거든요. 그렇게 ‘오픈 마인드’를 외치던 애들이 점점 생각하는 폭이 좁아지는 거 같아요. 
나이가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일 거예요. 나 역시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를 볼 때 똑같이 느끼니까. 끊임없이 긴장해야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 역할을 해야 된다는 말이 불편해요. 잘 못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어른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 긴장하면서 나를 고민하고, 생각해보면 되는 거죠.

 

데뷔 초반과 지금을 비교할 때 세상이 조금 달라진 거 같으세요? 
전혀요. 오히려 더 심각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면 이주여성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고민의 수준이 얼마만큼 달라지고 성장했냐를 보면 그렇게 많이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구요. 심지어 한국에서는 여성운동과 여성노동운동이 잘 겹합 되어 있지도 않아요. 그래도 <레드 마리아>를 만들면서 여성들 스스로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자꾸 얘기를 해야 된다, 다른 얘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결국은 불편한 사람이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단 그 얘기가 너무 공허해지지 않길 바라는 거죠.

 

감독님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에요? 
어렵다. 아주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자유로운 세상인 거 같아요. 서로를 통제하는 기준들은 낮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높은 세상. 그게 국가의 법이든 뭐든 간에 뭔가에 대한 기준치는 정말 필요한 기준치가 되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양성, 다름에 대해서는 폭이 넓어지길 바래요. 근데 지금 우리는 양쪽 모두 아니잖아요. 다름을 바라보는 폭은 굉장히 낮고, 기준치는 사람마다 다른 걸 적용하려 들죠. 제도나 법이 많이 달라져야 돼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식의 교육과 다른 식의 문화가 있어야 하는 거고. 오늘 앞에서도 많이 얘기했던 거 같은데 저는 여성의 시선이나 여성주의가 중요한 거 같아요. 여성주의 하면 자꾸 남자들과 여자들을 대립시키려고 하는데,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사회를 위한, 사회를 바꾸는 시선인 거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거죠. (웃음) 단 편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상대방도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게 가족이 됐든, 친구가 됐든, 애인이 됐든 간에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수림이도, 그리고 저 역시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issue #21, may 2012,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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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