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6. 3. 30. 09:48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감독의 내레이션 자막으로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곧이어 한국의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GG, Giant Girls)활동가, 성노동자 연희, 혜리, 밀사의 활동과 노동의 일상을 따라간다.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성 노동자들의 실태조사 및 연대를 위해 출국한 연희와 밀사는 일본의 스와쉬(SWASH, Sex Work and Sexual Health) 활동가 가오린과 유키코를 만나 일본과 한국의 성산업 인식과 노동 환경의 차이를 체감한다. 사회가 낙인한 이미지로서의 성노동자가 아닌, 그녀들 스스로 정의하는 성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그녀들이 되묻는 여러 질문과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삭제되고 숨겨진 존재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또한 침묵하지 않고 발화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강제연행의 유무, 한일 내셔널리즘의 문제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다각적인 측면의 위안부 문제 및 운동에 대한 그들의 의견과 삭제되었던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구술한다. ‘정대협’에서 10년간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운동을 했던 야마시타 영애는 그 운동 안에서의 남성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안부 담론을 비판했다. 정부, 언론, 한국 운동 단체 등에서 일본인 위안부는 매춘부, 한국인 위안부는 성노예로 규정하여 매춘부 출신의 위안부가 운동에서 배제됐던 과정, 일본 안에서 담론화 되지 않는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고 다른 시각을 갖게 되면서, 야마시타 영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결국은 다른 결로서 이런 담론 및 규정에서 출발했음을 환기하고, 개인의 정체성 역시 동일화하거나 양자택일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최초로 밝힌 배봉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술된 『빨간 기와집』의 르뽀작가 가와다 후미코는 일본과 조선의 근대사적인 측면의 도식적이고 관념적인 관점으로는 배봉기 할머니의 인생을 기록할 수 없음을 깨닫고 위안부 라는 낙인 뒤에 가려져 있던 가난한 환경과 전쟁 안에서 배봉기 할머니의 삶의 궤적을 5년간 취재하고, 5년간 저술했다. 배봉기 할머니는 단순히 취재 대상으로서가 아닌 가와다 후미코가 개인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녀의 응축된 감정과 개인의 역사, 배봉기 할머니의 삶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편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는 위안부 연구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으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그간 내셔널리즘 문제로 크게 퉁친 다음, 숨기고 취하지 않았던 역사의 잔해와 쟁점들을 오롯이 직면한다. 그간 역사와 사회에 공식적으로 기록되고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감독의 어머니를 비롯 가부장 사회의 성윤리속에 지워진 많은 여성들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기록하여 이 다큐멘터리 자체로 기록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한다.  


강바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2016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프로그램 노트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30. 09:38

경순 감독의 첫 영화 <민들레>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국회 앞 천막 농성을 기록한 영화다. 422일간의 이 투쟁은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 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독재 정권은 무너졌지만, 그 결실을 모두가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정작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이들, 이름 없이 죽어간 희생자들, 그리고 그들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법 앞에서 이방인이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기나긴 투쟁 끝에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가 출범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경순 감독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이후에 이어진 또 다른 싸움을 기록한다.


  특별법은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가졌다.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에는 민간 조사관과 파견 공무원들이 소속되어 있다. 대부분이 희생자들의 동료인 민간 조사관들은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원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조사를 할 권한은 주어졌지만, 그 조사를 위한 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강제할 권한은 없었다. 그들은 국가 기관을 포함한 피의자를 상대로 협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었다. 기무사, 경찰, 검찰 등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은 민간 조사관들과 섞이기 힘들었다. 국가 기관 소속인 이들에게 국가가 저지른 죄의 진실을 밝히라는 것은 어쩌면 모순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 조사관들을 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정해진 기간 안에 진행되어야 했던 조사의 결과는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혔다. 사건들의 반 이상이 밝혀지지 않거나,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아 기각되었다.


  이것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과거가 청산되기를 바라지 않는 자들, 그렇게 해서 이득을 얻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 의해 승인된 법은, 이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닌 그들만의 법이다.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싸움의 기록 끝에 덧붙인 감독의 말(“난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럽다.”)에서 하나의 답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회 안에서는 산 자도 죽은 자도 안전하지 않다.


송재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6 인디다큐페스티발 올해의 초점 프로그램 노트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25. 22:33

폭력을 증언하기 위해, 우리는 ‘마리아’가 되어야 할까?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얼마 전, 이슬람 페미니즘에 관한 한 강의에서 더위를 피하고자 사용되었던 베일이 어떻게 고대 아시리아 제국을 통해 성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전에 없던 국가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영토와 신분, 재산을 승계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고, 이에 여성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장치로써 베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승계와 상속에 이바지할 여성, 즉 군주의 아내나 딸, 남편이 있는 여성들은 베일을 쓰게 되었고, 노예나 매춘부 등에게는 베일이 ‘금지’되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베일을 쓰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여성들에게 베일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표식이자 동시에 특정한 남성에게 ‘귀속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서만이 ‘안전을 보장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여성들은 감히 ‘보호받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만이었지만 베일을 쓴 여성들, 즉 자신들의 연대기를 이어줄 ‘귀속된 여성’들을 지키는 것은 곧 이슬람 남성들과 그 공동체의 자존심이 되었고, 나아가 이슬람 민족주의의 기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지켜지지 못한 여성들’, ‘강간당한 여성들’이 그 공동체, 남성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추락시킨 상징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베일이 벗겨지는 것,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베일은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 과정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다시 끈질기게 유지되고, 재강화되어 왔다.

비단 이슬람만이 아니다. 성녀와 창녀, 아내 혹은 순결한 여자와 매춘부를 가르는 이중규범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여성 통제의 도구이자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이 되어왔다. 이 영화, <레드마리아 2>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삶과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교차시켜 짚어가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이중규범의 잣대를 다시 파고든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 ‘들판에서 울며 끌려간 소녀’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이 폭력을 증언할 자격을 얻을 수 없는 것이냐고. 여성들을 군수물자처럼 동원한 그 끔찍한 역사에서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 유곽에서 동원되어 온 매춘 여성들의 경험은 정말 본질에서 다른 것이냐고 말이다. 왜 해방 후 조선에 돌아온 ‘위안부’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가. ‘강제 성노예’와 ‘매춘부’를 구분 짓는 과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면죄부를 얻어 온 것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위안부’의 역사를 ‘지켜주지 못한 역사’, ‘민족의 자존심이 수탈당한 상징’으로 만들어 갈수록 그 역사에 숨은 더욱 근본적인 폭력의 본질은 망각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일제 폭력의 증언’과 ‘민족의 역사’로만 증명되어야 할 때, 그 잔인한 시대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여성의 다양한 경험과 연대의 역사는 구체성을 잃고 삭제되어 간다.

그리고 이 강제와 자발, 소녀와 매춘부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성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매춘부였다는 이유로 위안소의 폭력을 증언할 수 없었던 수많은 또 다른 ‘위안부’ 여성들처럼,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 현장을 떠나 ‘보호받는 여성’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으면 노동의 조건과 폭력의 경험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해외에서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나라 망신시키는 년’ 취급을 당한다. 법이 낙인을 강화하고, 다시 낙인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현실에서 안전한 노동을 위해 필요한 콘돔은 단속의 증거물이 되어 도리어 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하우를 만들어내고, 이를 공유하며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연대의 움직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베일을 쓸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일 없이 스스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레드마리아 2>는 불편한 영화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꼭 필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제국주의, 민족, 국가, 전쟁, 폭력, 강제/동원/자발의 스펙트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 권력과 규범의 복잡한 교차점들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내면화하거나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동조해 온 모든 전제를 쿡쿡 쑤셔댄다. 이제 우리가 이 불편한 질문들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출처 20회인천인권영화제 http://blog.naver.com/inhuriff/220524597432



Posted by 빨간경순
기사와 리뷰2016. 3. 13. 14:57

108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레드 마리아2>

진행 / 이승민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게스트 / 경순 (감독)

일시/2015년 12월8일

 

이승민 먼저 처음 몇 가지 질문을 감독님과 같이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레드 마리아잖아요. 전작 <레드 마리아>도 그렇고요. ‘마리아레드가 같이 들어가서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데요. 영화를 구성하시게 된 이야기를 제목과 더불어 이야기해 주시면.

 

경순 일단 <레드 마리아2>이기 때문에, <레드 마리아1>을 보신 분도 있고, 안 보신 분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일단 저는 한국의 고도의 자본주의와 사회가 달라졌지만 그 발전만큼 사실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그런 것들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레드 마리아>의 기획 자체는 그것을 으로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에서 출발했고요. 그리고 레드라는 이미지가 주는 것처럼 순결하지 않은, 기존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규정하는 것들을 바꾸는 새로운 여성의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승민 개인적으로는 마리아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 성경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와 성모 마리아가 있는 것처럼 레드가 가지고 있는 느낌이 영화 안에서는 여러 결로 느껴지더라고요. 어떤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권의 색깔일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연결돼서 와 닿는 제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안에서도 많은 분이 바깥에서, 마치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지 않고 접근하는 것처럼 <레드 마리아2> 역시도 보지 않고 무엇을 다루었나를 가지고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만나게 되는데요. 감독님께서는 사실 어머니에서부터 시작해서 성노동자, 위안부의 이야기를 이어내셨어요. 이렇게 구성을 잡으신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경순 저한테는 뭐라고 할까요. 이미 성노동자나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가 제게 포함이 되어 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옆집 언니, 아줌마, 할머니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이 매춘이나 성노동과 특히 한일간의 이슈가 된 위안부문제까지요. 그것이 이슈가 된 당사자가 있지만, 이미 우리의 문제가 됐고 나의 문제가 됐기 때문에 분리할 수가 없던 거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여성 문제를 대할 때 굉장히 분리되게 대하는 게 있는 거죠. 사실 매춘 여성을 이야기할 때 매춘부와 나는 다르다는 입장으로 접근하잖아요. 굉장히 특수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뭔가 안된 사람들여러 가지의 것으로 보지만, 사실 제가 보기엔 여자를 걸레라거나 무엇 같다고 하는 취급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취급으로 그들을 자꾸 특수화하는 것이 저는 불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르지 않은 문제가 왜 굉장히 다르게 이야기가 되고, 불편한 이야기가 되고, 남들의 이야기가 되었을까 하는 것이 저의 문제의식이었기 때문에 제게는 영화에서 포함될 수밖에 없었고, 그 이야기를 함께해야만 좀 본격적으로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게 너무 막혀있다 보니까, 이걸 뚫고 그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다음 이야기가 계속 못 나오고 거기에서 피해냐 아니냐 무엇이냐 하는 데서만 멈춰버리는 거죠. 그리고 삭제된 이야기가 너무 많고요.


Posted by 빨간경순
제작일기2016. 3. 10. 02:39

몇주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있는 순옥언니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소공인을 알릴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조언을 좀 해달라는 거였다.

소공인이라니....내머리속에 없는 단어여서 뭔가 싶었다.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는 검색을 하기 시작했겠지.

소공인에 대한 것보다는 사실 언니가 4년간 국회에서 뭔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였다.

10년전 창신동에서 수다공방을 할때 퍠션쇼에 상영할 영상을 만들어줄때 보고

몇년전 이소선어머님이 돌아가신후 장례식장에서 잠시 보고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거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그런가보다 했고 사실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사실 속으로는 국회에 왜 들어갔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나의 무심함만큼이나 그녀의 활동을 알만한 기사도 별로 없었다.

그녀의 트윗은 조용했고 그녀의 블러그는 소박하다못해 촌스러웠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언니를 만났다.

막상 간만에 언니를 만나니 왜케 반가운지 우리는 한동안 정신없이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니의 4년간의 의원생활이야기로 넘어갔고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헉...웬일이니...모든게 너무 놀라웠다.

소공인은 10인 이하의 소규모제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창신동의 봉제공장부터 문래동의 철공소 그리고 가방,신발 등 손기술로 수제작업을 하는 사람들.

한때는 수출역군으로 한국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3D업종으로 몰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곳.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의 80%를 차지함에도 단군이래 그들을 위한 법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곳.

사람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공돌이 공순이 미싱사 기술자의 연장선으로만 생각되는 곳.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그곳을 위해 순옥언니는 4년간을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소공인이라는 이름을 그들에게 선사했고

그 이름으로 소공인을 위한 특별법까지 만들어냈다.

그뿐이 아니었다.2015년에 소공인 특별법 시행령이 떨어지면서 전국의 688개의 소공인 집적지를 분류하고

집적지마다 소공인특화센터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소공인들의 전문화된 손기술을 장인정신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들을

국회의원이 된 첫해부터 매해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데 난 왜 이걸 여태 몰랐던거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왜 알려지지 않았던거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칠즈음 언니가 그랬다.

4년동안 숨가쁘게 달려오며 일단 법은 만들었지만 정작 할일은 이제부터야.

그런데 사람들이 아직 소공인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고 인식도 여전한거 같아.

나는 제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살고 일자리도 해결되고 경제도 산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소공인을 좀 알렸으면 하는거고 뭔가 영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나는 간만에 가장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국회가 입법기관이었지 하는 새삼스런 생각도 했다.

그저 정치판이 짜증나고 민주당이고 국민의당이고 국회와 관련된 기사는 대충 패스했던 이유도

그들에게서 단한번도 정책다운 정책에 대한 희망을 본적이 없어서였던거 같았다.

그런데 소공인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신선했고

심지어 그녀의 국회 생활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약간의 미안함과 함께 그녀의 뚝심과 비전에 감동까지 먹었다.

젠장...조언이 아니라 내가 직접 영상을 만들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언니에게 거꾸로 제안을 했다.

내가 보기에 언니가 뭔일을 했는지를 알리는게 더 필요한거 같아.

언니는 웃으며 수긍했고 나는 바로 영상제작에 돌입했다.

그리고 2주만에 뚝딱 8분짜리 작은 영상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2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소공인을 만났고

순옥언니에게 말로만 듣던 소공인들의 현실도 보다 구체적으로 보게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전순옥이 어떤의미인지를 새삼 알게되었다.

물론 그말은 거꾸로 전순옥에게 소공인이 어떤 의미인가를 알게되는 과정이기도 했고.

58년간 양복재단사로 살아온 한 장인이 나에게 그런말을 했다.

자기는 처음에 전순옥을 믿지 않았다고.

전태일의 동생이라고 해서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시다를 했다고 해서

영국에서 노동학박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소공인을 위한 입바른소리를 한다고해서 믿음이 가는건 아니라고.

근데 전순옥을 만나면 만날 수록 이 사람이 장난이 아닌거야.

이바닥에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 이바닥에 대한 지식이 많고

이바닥에서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더 문제들을 잘알고

심지어 새누리당을 지지할 만큼 보수적인 사람들도 움직이게 만드는데

어떻게 전순옥을 안믿을 수가 있나.

전태일은 모든 노동자들의 정신이고

이소선은 모든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리잖아.

그래서 내가 전순옥의원한테 이름을 붙여줬어.

모든 소공인들의 친구라고.


우자지간 흐믓했다.

그리고 언니가 기특했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국회의원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해내야 하는 곳인지도 새삼.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정말 정말 여성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이

그리고 정말 정말 정말 소수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들이

무엇보다도 예술가로 살아도 그리고 수입이 적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복지가 현실이 되는 정책들이 

그리고 제발 대기업중심의 천만영화보다 작은영화 천만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들이 마구마구 나오기를....

젠장 이 나라는 만들어야 할 정책들이 너무 많구나.

우자지간 이번 총선에 그런 국회의원들이 많이 발굴되기를 간만에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혹시 소공인과 전순옥이 궁금하다면 영상도 한번 봐주시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OaKWMDZxAbQ


영상물을 전해주러 갔다가 보좌관에게 전순옥의원 블러그 사진 좀 멋지게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보좌관이 그런다. 의원님이 그런 사진 따로 찍는걸 너무 싫어한다고.

그래도 나 있을때 한번 넌즈시 말해보라고 했다.내가 훈수를 보태주겠다고...

보좌관이 슬쩍 말을 디민다.의원님 이번에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소공인들과 사진한번 찍으시는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원님 버럭 하신다.

있는 사진으로 쓰면되지 뭘 그런곳에 시간을 써.

그래 사람들에게 안알려지는게 이유가 있지.암...하면서 의원회관을 나왔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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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
빨간경순의 노트2016. 3. 2. 02:21

정말 알 수 없다...

그 깊은 뜻을.


16.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코메디가 있다.

     상식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반복반복반복을 하는데 돈도 왕창 벌기도 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보다 더 이상한 일들이 매일매일 대한민국에 펼쳐지는 이유가 뭘까.


15. 사람들이 하는 많은 비판이나 비난거리 대부분이

      제대로 된 사실 파악이나 확인이 안된 것들 투성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인터넷의 기록으로 남는다.

      훗날 그 기록은 사람들이 찾아보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14. 많은 사람들의 언어가 지식화되고 있다.

     그 지식화된 언어가 만들어내는 지식화된 이미지.

     지식화된 예술의 자기만족과 지식화된 소비자의 자기최면속에

     지식화되지 않은 이미지는 어떻게 존재 할 수 있을까?


13. 동의하지 않지만 욕할 수도 없고

    지지하지만 지지한다 말하기도 그렇고

    심지어 모른척 하자니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 지는 일.

    이런 일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


12.세상에 아름다운게 있다는 걸 인간은 어찌 알았을까?

    그리고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인간은 어찌 알았을까?

    아름다운 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대체 대체...

    어떻게 인간은 알게 된 것일까?


11. 뭔가 청산을 하고 싶거나 지키고 싶은 것들은 비용이 든다.

     근데 청산에 든 비용은 아깝지도 않고 뒤끝도 시원한데

     지키고 싶은 것에 든 비용은 늘 기분이 찜찜하고 뒤끝이 안좋다.

     참 이상한 일이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