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일기2008. 10. 1. 16:40


윗 사진 : 빈민운동단체인 UPA에서 그레이스를 처음 만나던날. 이날 무슨대화를 하다가 이렇게 웃었는지 기억이 안난
              다.ㅎㅎ

              활짝웃는 친구가 그레이스이고 가운데 있는 친구는 지난번 사우스레일 촬영때 도움을 준 UPA활동가 티나.

아래 사진 : 그레이스집 이층의 난간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앉아 동네를 보고있자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가끔 괜찮은 그림들이 종종 잡히곤 한다.




경순, 담배는 너의 건강에 댄저러스해. 그만 좀 피워.
(그때 집밖으로 열차가 지나간다)
그레이스 니네 집이 더 댄저러스 하거든.너나 걱정하세요..

철로변에 사는 그레이스의 집에 머물러 있다보면 시간날때마다 아니 내가 담배를
피울때마다 반복되곤 하는 그레이스와의 대화다.
온통 쓰레기더미에다 카메라에 녹화되지 않는게 원망스러울 정도의 악취가 생활화된
이곳에서 그레이스는 늘 청결과 건강을 이야기 하곤 한다.
거기다 하나 더 살을 붙이자면 하나님 이야기까지.

그레이스 근데 혹시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은 없니?
난 4명이면 됐어. 너무 많이 낳고 싶지 않아.
너 이미 많이 낳았거든. 도대체 어쩌자고 이동네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거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래도 너의 하나님은 착한하나님이 아닌거 같아.
경순 그런이야기 하면 안되.
뭐가 안되. 너의 하나님이 착하면 어떻게 너희들더러 이렇게 아이를 많이 낳아
여자들이 이토록 고생하도록 놔두겠니.
....

눈을 몇 번 흘기고는 이내 걸레를 들어 여기저기 청소를 하는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다가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서
이곳 철로변에 둥지를 틀게됐고 현재까지 17년을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남편은 현재 철로변 근처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레이스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이제 6살짜리 막내아들을 두고 있는데
이곳에서 그만큼이라도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그레이스는 철로변에 사는 사람들중 부자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촬영을 온 후 이틀째 되는날 그레이스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막내아들이 눈이 짝짜기인데 니가 좀 도와줄 수 없겠니?
그레이스 난 부자가 아니야. 한국에선 나는 집도 없고 사무실도 없어.
내 재산은 그저 이 카메라 뿐이란다.나도 너만큼 가난하거든.
하지만 넌 비행기를 타고 이곳에 왔잖아.비행기값 비싸잖아.
그건 그렇지만...쩝...우자지간 나 가난하거든.

그래 이해가 안되겠지.
비행기타고 먼나라에 와서 보기만해도 비싼 카메라들고 영화를 찍는다는데
돈이 없다는게 이해가 될 리가 없지.
차비가 아까워 다른동네 한번 다녀보기도 힘든 그들이 택시타고 이곳에 촬영을 오고
남편은 늘 한 개피씩 사서 피우는 담배를 한갑씩 사서 피우는 우리들이
정말 가난한건지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지원을 받아서 너희들을 찍고 있지만
이곳촬영이 끝나면 어떻게 한국에서 먹고살거며 어떻게 국내 촬영을 하고
또 어떻게 일본에 갈 수 있을지 머리에 쥐가 나는 이 심정을
그들이 이해할 수는 없으리.
이곳의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떨어져가는 제작비를 걱정하며
다시 비싼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 알바를 시작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을
그들은 도저히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자지간 촬영 3주를 남기고 나는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
남아있는 잔고 3백만원이 떨어지면 필리핀에서의 숙박비며 남은 촬영비도 모자랄 판이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촬영도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때맞추어 들어온 알바를 놓칠 수 없었고 남에게 맡기기엔 남는게 없었다.
빠듯한 촬영일정과 흐름을 보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판단됐지만
결국 내가 들어가서 처리해야만 했다.
일이 한참 꼬이겠군 했지만 그나마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로했다.
우자지간 급하게 한국에서 일주일간을 보내고 나는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다시 찾은 그레이스의 동네.
이미 이주를 시작해서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린 철로변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심란했다.
서울에서 미처 다 처리하지 않고 온 일들부터 영진위에 지원한 제작비신청이 1차에서
무산됐다는 소식까지 온통 복잡한 일들이 마음을 후려치고 있었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이리도 더운지.
그많던 철로변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여기저기 끊어진 전기줄을 줍는 아이들과
조용히 창문밖을 보며 말없이 밖을 내다보는 할머니들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저리도 조용히 밖을 보는 것일까.

그러다 나도 그레이스집의 난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특별히 재미있는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는게 아닌데도 시간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고
나도 모르게 참 평화롭다라는 말이 머리를 계속 맴맴돌았다.
그레이스는 여전히 아들과 낮잠을 자고 잊을만 하면 한번씩 흔들흔들 지나가는
은하철도 999.

저녁이 되자 그레이스 가족이 함께 이주할 곳에 집을 지으러 간다기에 따라나섰다.
때맞추어 비는 억세게 퍼붓기 시작한다.
막상 차에 타고보니 그레이스의 가족만이 아니다.
같은 지역으로 이사가는 동네사람들이 트럭뒷칸에 꽉찼다.
철로변 사람들은 정부가 제공해주는 특정지역으로 이사를 가게되는데 그중 몬탈반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은 땅만 정부에서 제공받고(물론 공짜가 아니라 해마다 갚아야 한다)
집은 직접 자신들이 지어야 한다.
왜 이곳을 선택했냐고 물으니 다른지역은 너무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채소를 심을 수가 없단다. 자신들은 집은 작아도 조그마한 땅에 이것저것 채소를 심을 수 있는
땅을 원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그레이스도 주말마다 집을 짓기 위해 몬탈반으로 갔는데 벌써 두달째 짓고 있다는 집이
이제 벽돌 몇칸 올라온 수준이었다.
그레이스 난 니집을 보고싶어. 대체 언제 완성되는거니?
아마 내년 7월쯤...
오마이갓...그럼 그동안 어디서 살건데.
동생집에서 살다가 지붕이 완성되면 살면서 계속 지어야지.
그러면서 남편과 함께 열심히 집터의 잡초를 뽑고있다.
그레이스 난 아무래도 너희집이 정말 완성될지 상상이 안된다.

그런나를 오히려 처량하게 보면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담배한대 피워.
흐흐 웃으면서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 세워두었던 카메라를 지나가는 아이들이 툭툭 건드리자 그레이스가
쫓아와서 혼을 낸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마디 한다.
너 재산은 카메라밖에 없잖아. 잘 간수해야지.
그래 니말이 맞다. 내재산은 그것뿐이지.

처음엔 나에게 돈을 요구하던 그녀가 어느새 독립영화 레드마리아를 대변하는
대변자가 되었다. 누군가 촬영을 못하게 하거나 왜 이런걸 찍느냐고 묻기로도 하면
그녀가 어느새 말하고 있다.
이 친구는 독립영화감독이고 아시아의 여성들을 찍고 있으며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보기위해 우리동네에서 촬영을 하는거라고.
오 마이 그레이스.흐흐

과연 저 황량한 터에서 그들이 말하는 꿈같은 궁전이 언제쯤 지어질지..
아니 완성되기는 할런지.
여기저기 채소를 키우겠다는 그 채소는 어디서 꽃을 피울지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내년에 집이 다 지어질때 쯤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물론 속으로는 내년에 정말 이곳에 올 수 있을까를 조용히 되물으면서 말이다.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