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2. 2. 2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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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서울여성영화제는 마법사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행사였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작은 규모의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서울여성영화제는 중요한 스크리닝(상영영화 선정을 위해 미리 영화를 보는 행위) 코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은 달라졌다. 작년부터 메인 프로그래밍은 소용돌이가 하고 있고, 올해 인천여성영화제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인천여성회로부터 독립해 새살림을 차렸기 때문에 올해는 더더욱 마법사가 영화제 프로그래밍에서 완벽하게 손을 떼도 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 하나 쓰면서 얼마나 썼다 고쳤다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소용돌이가 읽고 서운해할까봐. ^^;;)

아무튼 그래서 올해는 서울여성영화제와 아무 인연도 닿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매년 구석구석 탐색하던 홈페이지도 아예 방문조차 한 적이 없으니 말 다했지. 내가 이렇다. 좋게 말하면 맺고 끊는 게 분명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대체 정이란 게 없다. 내 일이 아니다 싶으면 아예 싹 잊어버린다. -_-;;

그렇게 아무 관심 없이 지내다 대학원 동기들이 세미나 겸 영화관람이나 하자고 제안을 했고, 옳다구 싶어 예매를 하기 위해 서울여성영화제 홈페이지에 올해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러나 함께 보기로 한 경순 감독의 <레드 마리아> 인터넷 예매는 이미 매진이었다. 경순 감독의 파워가 이 정도인 거야? 그럴 만도 하지. 벌써 3년 전인가, <쇼킹패밀리>로 인천여성영화제를 방문한 적이 있는 경순 감독은 인천에도 꽤 많은 팬이 있는, 여성영화계의 유명 감독이다. ^^

그렇다고 포기할 마법사가 아니다. 서울여성영화제 기간 내내 출근도장을 찍을 것이 분명한 소용돌이에게 현장예매를 부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세미나 모임은 연기되었고, 나는 세미나 모임과는 전혀 상관없이 서울여성영화제 관람객이 되는 행운을 갖게 됐다.

여기까지가 마법사,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경순 감독의 <레드 마리아>를 만나게 된 사연. ^^  (매번 글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 글은 본론보다 서설이 더 길다. -_-;;;;)

자본주의, 여성, 노동 …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질문들

영화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레드 마리아>가 마니아가 아닌 보통 관객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실험영화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쿵, 쿵, 쌓이는 느낌이었달까?

(중략)  
  

주인공이 12명이다. 영화는 한국, 일본, 필리핀, 세 나라 12명의 하루를 정신없을 정도로 빠른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물론 마지막 12번째 주인공인 필리핀 바나나농장의 여성노동자는 촬영을 다 마쳤지만 영화가 상영되면 다국적기업인 Doll사가 해고할 것이라며 필리핀 상영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 결국 편집과정에서 빠졌다. 그러나 영화에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Doll사는 그녀를 해고했다. 이 사건만 보더라도 자본주의, 여성, 노동이 교차하는 지점의 정치성이 드러난다.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12번째 주인공은 세계화시대 여성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그러나 오히려 12번째 주인공은 우리가 자본주의, 여성, 노동을 생각할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전형성이라도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사노동자, 요양보호사, 빈민촌의 주민대표, 성노동자, 위안부 출신 할머니, 노숙인……,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세 나라 12명의 여성들 각자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매우 논쟁적이고 복잡하다.

일례로 필리핀 빈민촌의 주민대표 그레이스를 보자. 영화에서 그녀의 직업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선심쓰듯 필리핀에 건설해주는 철도(이렇게 가난한 나라의 기반시설을 지어주는 도움을 ODA라고 한다) 때문에 졸지에 철거민이 되어야 했던 필리핀 사우스레일 지역에서 그녀는 주민들의 대표로 생존권을 위해 싸운다. 과연 우리가 뻔히 상상하는 직업이 없다고 해서 그레이스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녀의 고단한 노동은 노동은 아니면 뭔가?

위안부 출신 리타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일제가 침탈해 한 마을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 여자들은 다 강간한 사실을 증언하고, 이제 나이들어 하나 둘 죽어가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장례를 챙기는 리타 할머니는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인가?

또 하나 예를 들어볼까? 일본의 노숙인 이치무라 미사코에게 노숙인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노숙인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노숙할 수밖에 없는 숱한 여성들을 상담하는, 그녀의 일은 일이 아닌가? 이치무라의 그 일과, 번듯한 직장은 가지고 있지만 인간적인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과, 그 둘 중에 어느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인가? 과연 우리가 노동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노동은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게 맞는가?

성노동은 또 어떻고. 성노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낯설 것이다. 매춘, 성매매는 들어봤어도 성노동이라니. 몸을 파는 것도 노동인가? 그럼 그녀들이 하는 일은, 그것으로 생존하는 그녀들에게 그 일은 노동이 아니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하나 더 예를 들어볼까?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이주해 온 여성 제나린은 직업이 없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다. 그러나 그녀가 한국에 오면서 결혼자금으로 필리핀 가족들에게 준 돈이 분명 있을 테고, 결혼해서 10년 동안 살면서 생활비를 아끼든 남편에게 용돈을 받든 어떻게든 해서 필리핀에 부쳐준 돈이 있다. 10년 만에 필리핀 친정집에 갔을 때 그녀와 남편의 양손엔 필리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이 한가득이었고,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도 그녀가 새로 단장했다. 그녀의 오빠가 아버지 무덤에 대고 말하지 않던가. 그녀의 가족 때문에 필리핀 가족들이 그나마 사는 거라고. 가난한 필리핀 가족들은 그녀를 해바라기하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결혼과 결혼 이후 한국에서의 결혼생활 자체가 일종의 노동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질문은 끝이 없다. 자본주의, 여성, 노동의 교차지점에서 12명의 주인공 각자가 하나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그것도 매우 무겁고도 논쟁적인 질문을. 그리고 그 질문은 한국과 일본, 필리핀이라는 국경을 넘나들며 얽히고 설켜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생각했다. 소용돌이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인천여성영화제에 가져올 생각을 하고 있던데, 과연 그게 맞을까, 걱정이 앞섰다. 물론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중요하다. 여성이고 남성이고 가릴 것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많기만 한 게 아니라 너무나 복잡하며 너무나 논쟁적인 질문을 한 영화로 이렇게 쏟아놓는 것이 과연 인천여성영화제와 맞을까, 하는 걱정과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에 경순 감독이 너무 욕심을 낸 건 아닐까? 그렇게 욕심을 내다 병이 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대학원 동기인 심통이 경순 감독과 개인적 친분이 있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경순 감독, 많이 아프단다. 감독과의 대화 때문에 무대에 섰는데 이전과 달리 야윈 모습에 눈물이 날 뻔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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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