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리뷰2016. 3. 25. 22:33

폭력을 증언하기 위해, 우리는 ‘마리아’가 되어야 할까?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

얼마 전, 이슬람 페미니즘에 관한 한 강의에서 더위를 피하고자 사용되었던 베일이 어떻게 고대 아시리아 제국을 통해 성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전에 없던 국가라는 개념이 확장되고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영토와 신분, 재산을 승계하고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고, 이에 여성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장치로써 베일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승계와 상속에 이바지할 여성, 즉 군주의 아내나 딸, 남편이 있는 여성들은 베일을 쓰게 되었고, 노예나 매춘부 등에게는 베일이 ‘금지’되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베일을 쓰면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말하자면 당시의 여성들에게 베일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표식이자 동시에 특정한 남성에게 ‘귀속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서만이 ‘안전을 보장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여성들은 감히 ‘보호받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이야 어떻게 되든 그만이었지만 베일을 쓴 여성들, 즉 자신들의 연대기를 이어줄 ‘귀속된 여성’들을 지키는 것은 곧 이슬람 남성들과 그 공동체의 자존심이 되었고, 나아가 이슬람 민족주의의 기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역으로, ‘지켜지지 못한 여성들’, ‘강간당한 여성들’이 그 공동체, 남성들의 자존심과 명예를 추락시킨 상징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베일이 벗겨지는 것, 베일이 금지된 여성들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었다. 그렇게 베일은 여성들 스스로 내면화 과정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다시 끈질기게 유지되고, 재강화되어 왔다.

비단 이슬람만이 아니다. 성녀와 창녀, 아내 혹은 순결한 여자와 매춘부를 가르는 이중규범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여성 통제의 도구이자 민족적 자존심의 상징이 되어왔다. 이 영화, <레드마리아 2>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삶과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교차시켜 짚어가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이중규범의 잣대를 다시 파고든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 ‘들판에서 울며 끌려간 소녀’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이 폭력을 증언할 자격을 얻을 수 없는 것이냐고. 여성들을 군수물자처럼 동원한 그 끔찍한 역사에서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 유곽에서 동원되어 온 매춘 여성들의 경험은 정말 본질에서 다른 것이냐고 말이다. 왜 해방 후 조선에 돌아온 ‘위안부’ 여성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가. ‘강제 성노예’와 ‘매춘부’를 구분 짓는 과정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면죄부를 얻어 온 것은 과연 어떤 이들인가. ‘위안부’의 역사를 ‘지켜주지 못한 역사’, ‘민족의 자존심이 수탈당한 상징’으로 만들어 갈수록 그 역사에 숨은 더욱 근본적인 폭력의 본질은 망각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일제 폭력의 증언’과 ‘민족의 역사’로만 증명되어야 할 때, 그 잔인한 시대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여성의 다양한 경험과 연대의 역사는 구체성을 잃고 삭제되어 간다.

그리고 이 강제와 자발, 소녀와 매춘부의 이분법적인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성노동자들의 현실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매춘부였다는 이유로 위안소의 폭력을 증언할 수 없었던 수많은 또 다른 ‘위안부’ 여성들처럼,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 현장을 떠나 ‘보호받는 여성’의 위치로 돌아오지 않으면 노동의 조건과 폭력의 경험을 드러내기가 어렵다. 해외에서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나라 망신시키는 년’ 취급을 당한다. 법이 낙인을 강화하고, 다시 낙인이 폭력을 재생산하는 현실에서 안전한 노동을 위해 필요한 콘돔은 단속의 증거물이 되어 도리어 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하우를 만들어내고, 이를 공유하며 스스로 주체가 되는 연대의 움직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베일을 쓸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베일 없이 스스로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레드마리아 2>는 불편한 영화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꼭 필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제국주의, 민족, 국가, 전쟁, 폭력, 강제/동원/자발의 스펙트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 권력과 규범의 복잡한 교차점들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내면화하거나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동조해 온 모든 전제를 쿡쿡 쑤셔댄다. 이제 우리가 이 불편한 질문들을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출처 20회인천인권영화제 http://blog.naver.com/inhuriff/220524597432



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