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경순의 노트2015. 8. 1. 01:41

오래전 시를 쓰는 선배가 썼던 

어떤 시가 불현듯 생각날때.

몇년을 보지 못했지만 

래도 내가 아는 지인 중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사람인간.


그 선배가 그런시를 썼었다.

'슬퍼서 술 퍼요

술퍼서 슬퍼요.'

그 형의 그 시집을 읽었을 때는 그저 재밌는 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난 매일매일 그 시를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형이 보고 싶은건 아닌데

그 시가 생각나서 그 형을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몇달전 촬영을 하다 또 한 선배를 만났었다.

그 선배가 처음 만난 누군가에게 나를 이야기했다.

만난지 오래됐고 꽤 친해요.

근데 만난지 15년은 된건 같은데 

그동안 15번도 못만난거 같습니다.하하하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났다.

그랬구나.내가 선배를 만난지 그런시간이 흘렀구나.

그리고 우린 그렇게 밖에 못봤구나.하하하


작년 이맘때 쯤 한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새로 만난 애인이었다.

소목공인데 요즘은 집도 짓는다고 했다.

친구와 지리산 한토막을 등반하는데 

그 친구는 30분 정도를 같이 걸었고

높은 곳이 무섭다며 먼저 내려갔었다.

그리고 오후 느즈막히 우리가 하산을 할때 냉커피를 한사발 들고

산밑에서 기다렸었던 그 친구.

우리셋은 그 친구가 지었다는 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간만에 포근한 잠을 잤었다.


그리고 일박이일을 즐겁게 보냈던 그 친구와의 세번째 만남은 

서울에 돌아와 보름이 지나서였다.

그 친구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일어날거라고 기도하며 서울로 올라왔는데

다음날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 후유증이 길었다.

나도 길었는데 친구는 얼마나 길었을까 했다.


그리고 한달전 누군가를 봤다.

처음 만난 친구지만 3박4일 같이 암벽을 타고 술을 먹고

수다를 떨던 어떤 친구.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은 길었던거 같다.

물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던...


근데 희한하게도 그 친구는 매일 만난다.

만나서 괴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7월 한달을 보냈다.

간만에 참 긴 한달을 보냈구나 새삼 많은 생각이 나는 날.

사람을 만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시간이 무색한 사람도 있다는 걸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살아있는 사람도

더 살지 못한 사람도

모두 모두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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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빨간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