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마리아> 이렇게 시작되었다!    by 경순





2년 전 나는 우연히 자신을 성노동자라고 소개하는 한 친구를 만났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순간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것도 한창 성매매반대 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는 시점인지라 ‘성매매에 대한 반대’와 ‘당당하게 성노동자라고 말하는’ 그 사이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순간 잘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그 두 가지가 내 머릿속에 조합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름 긴 시간 고민을 했던 거 같다.
그러면서 다시금 여성의 역사를 거슬러 보기 시작했고 내 속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그리고 늘 답답하게 생각이 됐던 성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윤간이나 강간이란 말은 왜 사전에 조차 남자들에게 여자가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지.
남녀평등은 쉽게 이야기 하면서 왜 성에 대한 사고는 그리도 결핍증에 가까울 만큼 진도가 안 나가는지.
타고난 여성의 출산 능력은 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묶여야만 하는지.
해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왜 줄어들지 않는지.
그리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남자들조차 가사노동과 양육에는 왜 늘 꽉 막혀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가부장제가 이런 이데올로기를 유포한 건 알겠는데, 왜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과 그 개방적이고도 성적인 수많은 광고에도 불구하고
사회 속의 이런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자본주의는 과연 여성 해방을 원하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이런 물음들이 채 해결되기 전에, 2년 전 본인의 전작 ‘쇼킹패밀리’상영 때문에 일본에 여러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방문하기 전 나의 머릿속에는 한국의 저출산을 우려하면서 보도하는 내용 중 가끔, 일본에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만나고 이야기해 본 여성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기 발언조차 하기 힘든 이미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에 갇혀 순종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한국의 여성운동을 막연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 필리핀에서 일 년을 살면서 또다시 내 속에 그려지던 그림 하나가 깨졌는데 이주여성노동자나 베트남 처녀처럼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는 여성들에 대한 단편적인 그림과는 다른 진취적인 사고의 여성들을 만나게 되면서다.
이들은 경제적인 가난에도 불구하고 훨씬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고 사회에서의 활동력도 남성들보다 진취적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 받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성과 결혼에 있어서는 대단히 보수적이라는 모순적인 상황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을 포함해 세 나라의 여성들을 비교해보면서 나의 고민은 풀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경제대국 일본, 신흥경제발전국 한국, 저개발국 필리핀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겉모양은 다르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공조 속에 여성들의 삶과 성에 대한 생각은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걸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딸로 태어나면서 부터 시작되는 차별들에 대한 경험, 그리고 차이와 차별에 가장 민감한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과 사회적 이슈, 너무나 구차해서 말하기도 귀찮을 만큼 뿌리 깊은 가사노동에 대한 이야기부터 성폭력과 성노동자, 그리고 이주여성들까지...
자본주의는 여성의 노동력을 가족과 성산업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에 분리시켜 윤리와 도덕이라는 잣대를 이용해 출산과 쾌락의 귄리를 여전히 보호와 통제 속에 가두어 놓고 있다.


우린 이걸 다시 뒤집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딸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남성성보다 약하다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지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고 갈수록 여성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국가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을 못하는지
성매매로 발생하는 경제규모가 24조 원대로 국민총생산의 4.1%나 되고 33만 명
    정도가 성매매 종사하고 있음에도 여성의 권리와 성노동자의 권리는 서로 이반이 돼야 하는지
혈연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 가난한 동남아의 이주여성들이 시집
    (이 현상은 결혼이란 말보다는 시집이란 말이 맞다)오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고 있는 것인지
출산은 그 자체로 인정되지 못하고 결혼과 가족 그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온갖 이데올로기에 종속 되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권리조차 제약을 받아야 하는지
경제가 발전한 나라에서 조차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왜 경제가 발전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

하지만 솔직히 이런 고민들만큼 내 머리 속에 정리된 결론은 없다. 어떤 이야기로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떤 인물이 가장 정확한 해답이 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나 역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런 시각으로 여성과 자본주의 문제를 다룬 연구서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다.
따라서 본 작업은 전작 ‘쇼킹패밀리’가 가족주의를 해부하기 위해 탐구하며 영화를 만들어간 과정이었듯이 '레드마리아’도 그런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확실한건 그 문제들을 짚어가는 과정으로서 현재 아시아 여성들, 특히 일본과 필리핀, 한국의 여성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식민지 시절부터 자본주의화 과정까지 긴밀하게 영향을 받은 한국과 필리핀은 여성문제에 조차 그 영향권 아래에 있어 왔고 지금도 많은 연결점이 있어, 여성과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탐구하는데 매우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 세 나라 여성들의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자본주의가 놓치고 간 많은 것들을 확연하게 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현재를 사는 여성들의 고민과 실재적 문제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행보 속에 우리가 시도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새로운 역사’로 만드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도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빨간경순